"리자, 어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있었던 일이 있었지. 뭐." "아.. 그건 가혹하다. 그건 너무나도 잔혹하다." (도스도예프스키 - 악령) 어쩌다 보니 포커와는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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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2 17:15:49

"리자, 어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있었던 일이 있었지. 뭐." 

"아.. 그건 가혹하다. 그건 너무나도 잔혹하다."

(도스도예프스키 - 악령)

 

어쩌다 보니 포커와는 큰 관련이 없는 얘기를 늘어놓게 됐는데 

너무 루즈해지는 것 같아서 다음편부터는 진행 속도를 조금 올리겠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고 좋은 하루!

 

 

 

토너먼트장을 벗어나면서 낮에 액션을 스왑한 친구 F와 마주쳤다. 

친구라고는 해도 사실 며칠 전에 베가스에서 만난 게 처음이었고

그 전에는 쭉 온라인에서만 이런저런 포커 얘기를 해오던 사이였다.

이실더와 저스틴 비버를 50%씩 빼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꾸밈없고 털털하고 그러면서도 예의바른 성격의 친구였다.

몇달 전에 내게 메일로 연락을 해왔을 때부터 F의 그런 성격을 알 수 있었고 왠지 그런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포커에서는 여러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교류를 하는 것, 소위 네트워킹이라는 게 무척 중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포커계의 특성상 여러 레귤러들과 교류를 하며 정보에 밝고 최근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온라인, 라이브를 구분할 것 없이 모든 포커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 그게 전부는 아니다.

 

포커는 본질적으로 외로운 게임이다. 

플레이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무한경쟁을 강요하지만

그 개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성취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오늘까지의 성취가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이 바닥에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다.  그리고 불확실한 일들에 대해 우리는 보통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포커에는 필연적인, 혹은 태생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종류의 외로움이 존재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참 신기한 것이어서,

우리는 타인의 외로움에는 거의 공감을 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이 감정적으로 삭막해졌다는 차원의 진부한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것은 타인의 공감을 얻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외로움은 고통과도 맞닿아 있다.

누군가 아프다고 하소연할 때 우리들 대부분이 할 수 있는 말은

"약을 먹는게 좋지 않을까?" 내지는 "병원에 같이 가보자" 정도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걱정하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한들, 내가 대신 아파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감하기는 어렵더라도, 이해하고 묵묵히 들어주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포커 플레이어들이 필연적으로 느끼는 이 특수한 형태의 외로움은

역시 그걸 빈번하게 겪는 포커 플레이어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꼭 멋들어진 말로 위로를 하지 않더라도 

게임이 잘 안 풀릴 때면 "다시 곧 잘 될거야"라는 말이라도 해줄 수 있고 

그마저도 뭔가 좀 아니다 싶으면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 터놓고 얘기할 수도 있다.

좋은 흐름을 타고 수익을 쭉쭉 올리면 신나게 자랑하고 추켜세워주고 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 별것 아니고, 무척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어차피 사람들이 감정을 다루고 처리하는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외로움을 달래는 것은 포커 플레이어로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포커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게임이라는 얘기다.

 

아무튼 저스틴 비버를 닮은 F의 표정을 보니 day 2에 진출한 것이 거의 틀림없었다.

15k 스택을 들고 시작한 토너먼트에서 이 친구도, 나도 거의 80k 정도를 들고 day 1을 마무리했으니 나쁘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으로 Rio를 나서려던 참이었지만 왠지 반가웠다.

액션을 스왑한 친구라서, 라는 계산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같이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내일도 같이 싸울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위안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길고도 힘든 하루였다.

토너먼트 참가 여부를 두고 마지막까지 갈팡질팡하던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어느덧 day 1이 전부 끝나 있었으니까.

 

슬롯머신들로 가득찬 로비 한 구석에 있는 바에서 진토닉을 주문해서 홀짝홀짝 마셨다. 

F는 호쾌하게 맥주를 연거푸 마셔댔다.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유쾌해졌지만, 아쉽게도 나는 알러지가 있어 맥주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

day 1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를 나누고

필드가 대충 어떠한지, 전략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

그리고 day 2에서 ITM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인지에 대해 서로의 예상과 주장이 뒤섞인 얘기를 기탄없이 나눴다.

160명 정도가 day 2에 진출했고, 대충 80명 정도에게 상금이 돌아가는 구조였다.

 

친구가 맥주를 마시는 속도에 얼추 맞추어 나도 진토닉을 마시다 보니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피곤해졌다. 

평소같으면 3시간쯤은 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친구도 

아무래도 day 2가 신경이 쓰였는지 오늘은 이쯤 마시고 푹 자고 day 2에서 보는 게 좋겠다고 말을 했다.

고맙게도 친구가 차로 호텔 앞까지 데려다 주고 떠났다.

 

호텔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돌아오니 다른 친구 S에게도 연락이 와 있었다.

이 친구도 90k 정도의 스택으로 day 1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이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어찌 되었든 나와 내 친구들이 전부 day 2까지 가게 된 것이다.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내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눈이 따끔거릴 정도로 피곤했지만 자기 전에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었다. 

이틀 이상 이어지는 라이브 토너먼트의 경우,

하루 일정이 끝나고 나면 주최측에서 (이 경우에는 WSOP) 결과를 정리하고 그 다음날의 테이블 대진표를 업로드한다. 

이 대진표에는 이름과 스택 사이즈, 테이블 포지션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라이브 토너먼트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서 게임을 해야 하고

테이블에서 마주치자마자 상대 머리위에 허드가 뜨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무엇 하나라도 정보가 있다면 이걸 사전에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내 테이블 드로우를 간단히 확인하고, 같이 앉게 될 플레이어들을 hendonmob에서 하나씩 검색해서 대충 이렇게 정리를 해 놓았다.

 

Seat 1 A - 매우 경험이 풍부해 보임.  라이브 토너먼트 상금 6M (69k stack)

Seat 2 B - 상금 312k (28k stack)

Seat 3 나 (75k stack)

Seat 4 C - 상금 1.2M (25k stack)

Seat 5 D - 상금 52k (82k stack)

Seat 6 E - 상금 77k (23k stack)

 

직접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토너먼트 성적을 검색해 본 결과 1번과 4번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라이브 토너먼트 경험이 꽤 많아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내 바로 왼쪽에 있는 C였다. 

그러나 스택도 충분히 있고, 필요 이상으로 긴장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체크를 해 놓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피곤한 탓이었는지 오랫만에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S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혹시 일어나 있으면 브런치나 같이 먹으며 포커 얘기를 좀 해보자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약속 장소를 정한 뒤 샤워를 하고 옷을 대충 챙겨입고 Rio로 향했다.

긴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랐다.

라이브 캐시를 칠 때에는 이런 걸 바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지만

토너먼트는 어쨌든 오래 살아남는 게 장땡이니까.

 

S도 F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 먼저 알게 되었고, 실제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포커에서의 인간관계가 대부분 그러하듯 딱히 어색하거나 한 점은 없었다.

S는 특이하게도 온라인에서는 플레이를 많이 하지 않고,

라이브에서 $10/20 이상의 PLO 및 mixed 게임을 주로 하는 캐나다인 포커 프로였다.

브런치를 먹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은 유소년 하키 팀도 하나 가지고 있다고 했다. 

 

day 2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브런치를 먹었다.

프렌치 토스트를 주문했는데 토스트 옆에 메이플 시럽과 바게뜨가 같이 나왔다.

토스트를 시켰는데 바게뜨가 같이 나오는 경우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처음 겪는 것만 같았다.

마치 본죽에서 전복죽을 시켰는데 공기밥이 같이 나오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 

S는 벙쪄있는 내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자기가 주문한 오믈렛을 우물우물 씹어먹고 있었다.

 

나는 딱히 입이 짧은 편은 아니지만 바게뜨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혼자 살던 시절 수중에 가진 돈이 전부 바닥나고 딱 10유로가 남은 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일찌감치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어리고 경제관념이 없을 때이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일로 큰 지출을 한 차례 겪은 탓에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손에는 문자 그대로 10유로짜리 지폐가 달랑 하나 남아 있었다. 

얼추 계산을 해 보니 앞으로 2주 정도를 이 돈으로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화로 환산하면 하루를 700원 정도로 버티며 2주간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배가 고파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배가 고픈 건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왠지 앞으로 2주 동안은 늘 배가 고플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소 요리를 거의 하지 않고 밥을 늘 사먹던 내게는 거의 패닉이 올 지경이었다.

 

생전 거의 처음으로 식료품점에 들러서 가격표를 들춰가며 고민을 해 봤지만 

뭘 어떻게 해도 2주를 10유로로 메꿀 재간이 없었다.

진열되어 있는 식품들은 양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가격이 턱없이 비싸거나, 혹은 둘 다였다.

쌀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쌀을 파는 식료품점에 가려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했다.

한 자루에 얼마가 하는지도 모르는 쌀을 사겠다고 10유로 중에서 4유로 정도를 교통비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패배자가 된 기분으로 식료품점을 나서서 한참을 걷다가 빵집을 발견했다.

아무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들어간 빵집 한 구석에는 길다란 바게뜨들이 바구니에 꽂혀 있었다.

딱딱하고 볼품없는, 그렇지만 고맙게도 가격이 참 저렴한 그 빵들이 너무 반가웠다.

 

승리자가 된 기분으로 바게뜨를 한아름 안고 약간의 거스름돈을 받고 빵집을 나서다가

내가 아무리 바닥을 치고 있더라도 바게뜨만 2주 동안 먹다가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의 남은 돈을 꺼내서 한참 물끄러미 쳐다보고 

2주 동안 묵묵히 바게뜨를 먹고 있을 앞으로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고

한숨을 한번 푹 쉬고 작은 누텔라를 하나 샀다. 

딸기잼을 사고 싶었지만 쓸데없이 유기농 딸기잼이라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바게뜨는 처음 며칠 동안은 참 맛있었다.

겉은 딱딱한데 속은 부드러운 텍스쳐가 단조롭지 않아서 좋았다.

맛에 질릴 때마다 누텔라를 조금씩 아껴서 찍어 먹으면 그런 대로 먹을만도 했다.

"이것이 파리지안의 생활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미친놈처럼 혼자 킥킥댈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니 나머지 바게뜨들은 돌덩이처럼 굳어가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묵묵히 씹어 넘겨야 했지만 그러다가는 이빨이 몇개 부러질 것만 같을 정도로,

대체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초현실적으로 딱딱해졌다.

마치 철봉에 누텔라를 발라서 씹어먹는 느낌이었다. 

 

배가 고픈 데 먹을 것도 딱히 없고 그나마 있는 빵은 딱딱해서 씹어 삼키기가 어려웠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그냥 울고 싶었다.  배고픈 게 이렇게 서럽고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비실비실거리다가 차라리 잠이라도 자면 덜 배고플 것 같아서 지쳐서 잠든 날도 많았다.

돈이 없으면 먹고 사는 데에 불편함과 지장이 생긴다는 지극히도 간단한 명제가 피부로 직접 느껴지는 나날들이었다.

지금까지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끔찍했던 2주일이 지나고 예정대로 돈이 조금 생긴 날 

은행 잔고를 확인하자 마자 전철을 타고 나가서 시내에 있는 한식집에서 김치찌개를 시켜서 먹었다.

김치찌개가 20유로쯤에 공기밥 한그릇 추가에 3유로나 하는 모친출타한 집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더이상 바게뜨와 누텔라의 콤보를 맞지 않아도 된다.

그것만으로 그냥 기뻐서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평소라면 찌개를 시켜도 건더기만 건져 먹고 국물은 몇 숟갈 마실까 말까 하는 편이지만 

이 날은 뭐 하나라도 남기는 게 너무 아까워서 아예 뚝배기째 들고 찌개를 후룩후룩 마셨던 것 같다.

 

기억이라는 것은 묘한 것이어서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더라도 지나가고 나면 어느 정도 미화가 되고 웃어 넘길 수 있는 추억처럼 탈바꿈한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 저런 상황이 닥쳤더라면 저 때보다는 융통성을 조금 발휘해서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몇줄 적으면서 웃어 넘길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바게뜨만큼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몇번 먹어보려고도 했지만 그 때마다 이빨이 부러지고 목이 메이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이 잘 안 풀리면 언젠가 다시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까?

 

이야기가 계속 밖으로 새는 것을 허락한다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결식아동 후원을 해오고 있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극히 평범했고, 여기에는 아무런 고뇌도 담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을 한다는 명목으로 삼촌 한 분이 세뱃돈을 두둑히 주셨고 

그건 내 입장에서는 당장 쓸 일이 없는 돈이었기 때문에 통장에 그대로 저금해 두기로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결식아동을 돕는 이런 단체가 있는데 입학 축하금 받은 것으로 조금씩 후원을 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하셨고 

한달에 몇만원씩 알아서 빠져나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ㅇㅋ 그러죠"라고 대답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후원 단체에서는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에

내가 후원하게 된 결식아동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보내왔다.

강원도의 한 산골에 살고 있는 어린 남매였다.  오빠가 9살, 여동생이 7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셋이서 어렵게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는 남매인데,

그 할머님은 뭔가 사정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시라고 했던 것 같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던 내가 보기에도 "아, 하루하루 쉽지 않겠구나" 하고 느껴질 정도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후원금을 얼마로 할래?" 라고 어머니께서 물어 보셨고

난 별 생각 없이 "5만원 하죠 5만원"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후원하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후로 내 통장에서는 매달 5만원씩 착실하게 빠져 나갔다.

 

고1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두 개 받았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던 누나가 "목걸이 선물 고마워"라고 하며 써준 카드였다.

무슨 돈이 있어서 목걸이 선물을 했는지, 어떤 목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눈송이가 하늘하늘거리는 장식의 예쁜 카드였고

별다른 내용도 없는 그 카드를 나는 수십 번도 넘게 읽어보았던 것 같다. 

혹여나 카드가 구겨지거나 더러워질까봐 손을 자주 씻어 가면서.

 

다른 하나는 색도화지를 접고 그 위에 색종이로 이것저것 오려 붙여서 서투르게 만든 카드였다. 

후원아동들이 보낸 카드였다.  아마도 문방구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는 것은 그들에게는 사치였을 것이다.

카드 안에는 고사리손으로 써내려간 글씨체로 

"xx 선생님 저희를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할머니와 저희는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어요" 정도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 너무도 어렸다.

연애편지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심혈을 기울여가며 답장을 쓰고 지우고 그것도 모자라 새 편지지를 사와서 쓰고 하기를 반복했으면서

후원아동들이 보낸 카드는 별다른 감흥 없이 그대로 책상 위 박스 안에 처박아 두었다.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후원아동들은 그 뒤로도 그들의 생일이나 내 생일, 어린이날 등의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답장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도와주는 거니까 편지를 받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정도의 치기어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은 서서히 내 마음 속에서 잊혀졌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오랫만에 어머니와 둘이 외식을 하던 날 

칼국수를 드시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으시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언제부턴가 내 계좌에서 자동이체가 정지되어서, 후원아동들이 두 달째 돈을 받지 못했다고 후원단체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받던 나날들인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이 문제까지 다시 들추어 내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상하네, 왜 그렇지. 그것보다 어머니 저 칼국수 더 시켜도 되죠?" 라고 말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세뱃돈으로 받아서 통장에 넣어둔 돈은 유한한 액수였다. 

그러니까, 유한한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전부 다 쓰이고 없어질 만큼의 액수였던 것이다.

그 유한한 시간은 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그 유한한 액수는 내 생각보다도 턱없이 적었다.

다행히 두번째 달 분은 어머니께서 나 대신 급하게 채워서 보내셨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이 늦게 온 탓에 첫번째 달 분은 그럴 수 없었다고 말끝을 흐리시면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내 계좌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그 5만원이라는 돈이

이 어린 남매와 그들의 할머니에게 얼만큼의 의미를 가지는 액수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자세한 사정을 알려고 해도 고1이었던 내 견문으로는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겠지만

그런 사정을 자세히 알려는 마음 자체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막연히 누군가를 돕는다는 데에서 비롯된 값싼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허울좋게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겠지.

 

5만원이면 세 식구가 보름 동안 먹을 라면을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라고 했다. 

라면이 맛있기는 해도 보름 내내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봤다.

질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라면을 참 좋아하니까 자주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기는 해도 보름 내내 라면을 먹는다면 나 역시도 아마도 질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5만원의 후원이 끊겼을 때 그들은 그 질리는 라면조차도 먹을 수가 없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너무도 큰 실수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엔 편지를 그렇게 자주 보내던 애들이 왜 후원이 끊겼다는 소식은 전해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이 그런 편지를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답장 한 번도 한 적이 없지 않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오롯이 내 잘못이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내가 부주의했고 무신경해서 생긴 일이었다.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마음 한 켠에 묻어둔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가 없었다.

입안이 바싹 말라 칼국수가 목구멍을 좀체 넘어가질 않았다.

 

"니가 후원을 중단해도 되고, 그게 정 마음이 불편하면 엄마가 이어서 후원하마"라고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중단하면 마음이 불편하기는 해도 잠깐이면 잊혀질 것이다.

후원아동들과의 연락도 끊길 것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될 테니까.

그리고 어머니께 마저 저 대신에 이어서 후원을 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면 잠시동안 마음이 불편할 일마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실수를 한 일인데 그렇게 유야무야 마무리짓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후원을 끊으면 앞으로 라면을 먹을 때마다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내가 라면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돈을 빌렸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과외를 하든 뭘 하든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말씀드리고 

이 어린 남매들 후원을 계속하고 싶으니 그 때까지만 어머니께 매달 5만원씩 돈을 빌려주십사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한숨을 한번 쉬시고는 여러가지 말씀을 해 주셨지만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닌 것이며, 돈은 어떻게 쓰는지가 참 중요하다"는 말씀만큼은 잔소리로 들을 수가 없었다. 

"세상 일은 호의로만 되는 것이 아니란다"는 말씀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 돌아온 나는 박스 안에 있던 편지들을 전부 꺼내서 다시 읽어 보았다.  그리고 답장을 하기로 했다.

막상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어서

"그 동안 편지 고맙게 잘 받았는데 답장이 늦어 미안하고, 늘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할머니 말씀 잘 들어라" 정도의 상투적인 얘기를 했다. 

고작해 봐야 고등학생인 내가 할머니 말씀을 잘 들으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한달 후원이 끊겨서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두 줄로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하기엔 또 가책이 느껴져서 "너희는 무슨 라면이 제일 좋니?"라는 말을 덧붙여서 편지를 보냈다. 

 

이 오누이들은 참 빠르게도 답장을 했다. 

그들은 나를 꼭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번 카드에서도 "선생님 답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첫 문장이었다.

바쁘면 답장을 잊을 수도 있는 거니까 자기들은 괜찮다고, 속상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진라면이 좋다고 했다.

 

그 카드를 받고 나는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생각이 깊고 철이 드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내 나이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 오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생각이 깊고 철이 든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답장을 받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했고

그 후로도 우리는 한달에 한두 번 정도의 간격으로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았다.

 

대학교 새내기 때에는 참 정신이 없었다.

지금껏 겪어본 적이 없었던 자유로움은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졌고

술자리는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이 즐거웠다. 

술과 안주는 종류와 상관없이 맛있었고

술자리에서 하는 얘기도 종류와 상관없이 마냥 재밌기만 했다. 

4월이 되어 캠퍼스에 벚꽃이 한창 필 때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거나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싱글벙글하며 학교 여기저기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딱 한 가지만큼은 잊지 않기로 자신에게 약속을 했다.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스스로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빌린 돈을 갚고 내 힘으로 후원아동들을 돕는 것을 계속하자는 약속.

의지가 참 약한 나였지만, 그런 나로서도 이건 어렵지 않게 계속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좋아하는 진라면을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후원금이 끊겼던 그 한달 동안, 그 오누이와 할머니 세 가족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내 입장에서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주제넘는 일일 것이며, 위선적인 이타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번 곱씹어보게 되는 생각이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실수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고 자의식이 팽배해 있을 때에는 "나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역시 내가 욕먹을 짓을 한 거겠지?" 라는 생각을 주로 했지만

최근에는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라면 말고 뭔가 다른 건 먹을 수 있었던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아마 나 역시 바게뜨와 누텔라로 보름 정도를 연명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끔찍하고 토할 것 같은 기억이었지만

그걸 통해 다른 사람의 배고픔, 그리고 고통을 뒤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포커로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고민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직업에서 내가 어떻게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포커로 수익을 내고, 포커 플레이어라는 직업을 가진다는 것 역시

간단히 말하면 남의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내 주머니에 넣는 것이다.

내 주머니가 두둑해진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는 홀쭉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그렇게 번 돈으로 스테이크를 먹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진라면을 끓여먹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나마 미사여구로 포장을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이타심은 포커에서는 발붙일 곳이 없는 듯 느껴졌다. 

모두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크기가 정해진 파이에서 누가 더 큰 조각을 가져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제대로 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생각해 보고는 있지만, 이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하나 미봉책으로 생각해 낸 것은

포커로 낸 수익, 그러니까 남의 주머니를 홀쭉하게 만들어서 번 돈의 일부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쓰자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참 어려운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식아동을 후원해 왔던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조금 더 많은 결식아동들에게 조금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턴가 포커로 낸 수익의 10% 정도를 후원 내지는 기부해 오고 있다.

10%라는 숫자에 딱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십일조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하면 가오가 살겠지만, 내게는 종교가 없다.

이런 정도로 내가 뭘 대단하고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단 한번도 없다. 

세상에는 정말로 대단하고, 위대하고, 또 스케일이 웅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적은 돈으로도, 나 정도의 소시민으로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경로는 꽤 많았다.

 

물론 나 때문에 주머니가 홀쭉해진 그 누군가에게 이 돈이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을 것이다.

모두가 진라면으로 세끼를 때우거나 돌덩이처럼 굳어진 바게뜨에 누텔라를 찍어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배고픈 게 싫으니까. 

그리고 내가 싫은 것은 남들도 아마 싫을 테니까.

 

다시 프렌치 토스트와 바게뜨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S와 브런치를 먹으며 토너먼트 전략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

가장 먼저 화두가 된 부분은 ITM이었다. 

160명 정도가 day 2를 시작하게 되고, 그 중 절반에 가까운 80명 정도가 상금을 받는 상황이었다.

우리 둘은 몇시 정도에 버블에 근접할지, 또 버블이 언제 터져서 ITM이 될지 얼추 예상을 해 봤다. 

아마 4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라는 데에 둘다 동의를 했다.

그러자 S는 뭔가 PLO 일반론이 아닌, 토너먼트 자체만의 전략에 대해 해줄 말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잠깐 생각 끝에 "배리언스를 줄여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건 대충 이런 의미다.

 

PLO에서는 팟을 키워 놓으면 어느 순간부터 둘다 스택을 다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나온다.

예를 들어 3벳 팟 플랍에서 나는 탑셋을 맞추고, 상대는 페어 + 랩을 맞춘다면 숏스택인 경우 둘다 거의 예외없이 칩을 다 밀어 넣어야 한다.

탑셋은 물론 60:40 정도로 앞서 있고, 탑셋으로 스택오프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EV인 플레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머지 40%의 경우에는 스택을 전부 잃고 토너먼트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뱅크롤이 충분하다는 가정을 하면, 캐시에서는 탈락이라는 개념이 없다.  칩을 언제든 채워 넣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너먼트는 그렇지가 않다.  토너먼트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유효 스택이 너무 작아서 올인 싸움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둘중 하나가 치명상을 입을 여지가 있는 스팟은 가급적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비단 3벳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토너먼트에서는 캐시에 비해 작은 벳 사이징을 사용한다. 

그리고 캐시에서는 벳을 하거나 레이즈를 하는 게 스탠다드라고 해도

토너먼트에서는 첵을 하거나 콜로 끊는 게 스탠다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배리언스를 줄이는 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과 내가 "배리언스를 줄이자"는 명제에 동의하고 그에 맞게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버블 플레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얘기를 했다.

라이브 토너먼트는 온라인 토너먼트에 비해 버블이 오래 지속되고 

어떻게든 ITM을 하려고, 민캐시라도 받으려고 극도로 타이트하게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비중이 훨씬 더 높다.

라이브 토너먼트는 바이인도 상대적으로 크고 ($3k는 라이브 토너먼트 중에서는 낮은 바이인이지만, 온라인이라면 엄청나게 높은 축에 낌)

무엇보다 힘들게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호텔을 잡고

우여곡절 끝에 day 1을 마무리하고, 또 우여곡절 끝에 day 2의 ITM 버블 근처까지 왔는데

대충 스택을 때려박고 "안되면 말지 뭐" 하는 마음가짐으로 포커를 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테이블에서 빨리 포착해 내서 끊임없이 공격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구체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이런 타이트한 플레이어들이 블라인드에 앉아 있을 때 아주 높은 빈도로 스틸을 하는 것이다. 

이 플레이어들은 내가 2-2.5x 정도로 레이즈를 해도 -- 원래대로라면 100%에 가까운 레인지로 빅블라인드를 방어해야 하지만 --

한숨을 쉬고 시간을 끌다가 결국 나를 한번 째려보고는 천천히 폴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나를 째려보고 폴드를 할 때의 내 전략은 무척 간단하다.

상대가 나를 째려보고 콜이나 레이즈를 할 때까지는 계속 스틸을 거듭하면 된다.

 

다른 하나는 플랍에서 우리가 IP에 있을 때 평소보다 작은 c-bet을 하거나

상대가 c-bet을 했을 때 작은 레이즈를 하는 것이다. 

캐시게임에서라면 스택이 깊기 때문에 이런 전략이 잘 통하지 않는다.

작은 c-bet이라면 상대는 쉽게 콜을 하거나 레이즈를 날릴 것이고

상대의 c-bet에 대해 작은 레이즈를 해 봐도 상대는 그냥 콜을 하면 된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이런 식으로 팟을 키우는 것이 상당히 부담이 된다. 

자칫 잘못하면 지금 이 핸드가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까.

게다가 플랍에서의 벳이나 레이즈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이걸 콜하면 상대가 턴이나 리버에서 또 강한 벳을 날리고 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쉽게 말해서 토너먼트에서는 암시적인 위협 (implied threat)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S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키 구단주쯤 되는 입장이면 $3k 토너먼트에서 굳이 배리언스를 줄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캐시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내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밥을 다 먹을 때쯤 저스틴 비버를 닮은 F가 합류해서 우리 셋은 대충 인사를 하고 방금 했던 얘기를 F에게도 했다.

F도 우리의 말에 전폭적으로 동의했다. 

게다가 "결국 토너먼트는 런이 좋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단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 강력한 진리를.

 

우리 셋은 "배리언스를 줄이자!"는 뭔가 상당히 공산주의틱한 구호를 외치며 식당을 나서서 토너먼트 장소로 향했다.

혼자 토너먼트장으로 걸어가는 것보다는 확실히 이 쪽이 훨씬 더 마음이 편했다. 

비록 미래는 늘 불확실하더라도, 현재는 덜 외로우니까.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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