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know why we are here, but I'm pretty sure that it is not in order to enjoy our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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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0 19:16:37

I don't know why we are here, but I'm pretty sure that it is not in order to enjoy ourselves. (Ludwig Wittgenstein)

 

우리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게 삶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WSOP (The World Series of Poker)는 매년 5월 말에 시작해서 7월 중순 정도까지 이어진다.

Sin City라는 별명을 가진 라스 베가스는 일년 내내 관광객들이 많고 화려함을 뽐내지만

WSOP 시즌이 되면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특히나 더 붐비고

게다가 사막 특유의 고온 건조한 기후 때문에 조금만 밖을 돌아다니면 뜨거운 햇볕과 아스팔트의 열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그래서 꼼짝없이 실내에 머물면서 카지노에서 시간과 돈을 쓰는게 개꿀이라고 할 수 있다.

(바깥 온도가 섭씨로 40도쯤 되면 이불 밖도 위험하지만 건물 밖은 진짜 헬게이트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온 다습한 더위와는 사뭇 달라서, 한국인들이 꽤 많이 힘들어하는 걸 여러번 봤다)

 

관광객들을 제외하고 세계 각국에서 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가? 하면

그건 당연히 WSOP를 비롯한 많은 토너먼트들과 캐시게임 때문이다. 

포커라는 게임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모이고, 그러다 보면 희노애락의 온갖 드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이런 면에서 포커는 - 특히 토너먼트 포커는 -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소박하고 단순명료한 꿈.

비록 지금 당장 내 수중에 아무것도 없어도

운이 좀 좋으면, 혹은 어떻게든 기회 한 번을 잡으면 나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꿈.

지금까지의 과거와 현재에 비해, 앞으로의 미래는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날 것이라는 꿈.

작지만 소중한 그런 꿈 한 조각씩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렇지 않으면 6-7월 한여름 더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날씨좋고 선선한 곳으로 피서를 가는 대신에

카지노 실내에서 카드 몇 장을 들고 울고 웃으며 수십, 수백 시간을 보내는 현상을 설명하기란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아메리칸 드림은 올바른 것인가? 심하게 왜곡된 것은 아닌가? 

현실을 도피하려는 하나의 핑계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은 잘못되었다. 

모든 종류의 꿈은 올바른 것이고, 왜곡된 것이며, 또한 어느 정도는 현실 도피를 도와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원하는 어떠한 꿈이라도 마음껏 꿀 권리가 있으며

그건 현실이 아닌 꿈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왜곡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서 물어야만 한다.

누가 이 꿈을 이룰 것이며, 누가 이루지 못할 것인가?

꿈에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는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된다.

포커로 얘기를 한정시키자면,

포커 플레이어로서 무엇에 집중하고 어떻게 실력을 향상시키며 수익을 내야 할지는 이런 질문들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비슷한 꿈을 가지고 6월 중순쯤 베가스행 비행기를 탔다.

재작년부터 쭉 이맘때엔 베가스에 있었으니, 올해로 WSOP 참가도 벌써 세번째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마냥 부푼 마음만으로 베가스로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포커, 특히 토너먼트 포커의 배리언스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걸 조금씩이나마 배워왔고

내 미천한 실력으로는 그 배리언스를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많은 돈을 주고 배워서 이제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지만, 전업을 하는 입장에서 꿈 한조각에 많은 걸 맡기는 건 어찌 생각하면 매우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참가하는 게 나한테 +EV인게 확실하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건 포커 플레이어로서 내 최후의 자존감과도 같은 거라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가 포커를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잃고 싶지 않은 마음가짐 비슷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참가하는 게 +EV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사실 내 스스로 냉철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고, 누가 도와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커 플레이어로서 현실감각을 유지하는 것과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갖는 건

한끗, 아니 반끗 정도의 차이가 날까 말까한 애매한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건 축적되지 않는 종류의 고민이라서, 늘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는 충분히 엣지가 있다고 믿어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게 사상누각처럼 공중분해되는 일도 수없이 일어난다.

혹은 그와는 반대로, 실제로 엣지가 있고 좋은 결정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배리언스의 탓에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참혹한 결과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번 되풀이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도 다 게임의 일부 아냐? 싫으면 취직하든가"라고 제3자의 입장에서 팔걸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서 한마디 하는 것은 쉽다.

우리는 대개 타인의 일에 크게 관심이 없으며, 굳이 애써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저게 자기 자신의 일이라면, 그때 그걸 스스로 이해하고 적용시키는 건 무던히도 어렵다.

포커 플레이어로서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EV인 스팟들을 찾아간다는 것은

내가 살면서 겪어본 일들 중에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로 꼽힌다.

 

어찌 되었든, WSOP 기간 동안 토너먼트와 캐시 게임을 치는게 +EV라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6월 중순의 어느날 밤, 초여름 저녁의 어스름한 노을을 뒤로 하고 베가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며칠 뒤에 있는 $3k 바이인 PLO 6max 토너먼트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그 다음의 일정은 일단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걸 지켜보면서 결정을 하기로 했다. 

기내가 조금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후드티를 꺼내서 껴입었다. 

추위를 거의 타지 않는 성격이지만, 뭔가 중요한 일이 곧 닥쳐오는데 춥다는 느낌이 들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왠지 좀 위축되고 자신감이 옅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소싯적에 별로 성욕도 없으면서 그냥 누군가의 체온이 마냥 그리워서 클럽에 자주 드나든 적이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기저에 있는 감정은 물론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시간이 흐르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소되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구름 속으로 접어들면서

나는 문득 몇년 전에 사무치게 느꼈던 그 외로움이라는 한 조각의 감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포커 역시 참 사람을 외롭게 한다는 걸 사뭇 느꼈다.

어딘가에 의식을 집중하고 꾸준히 노력함을 요하는 일이 모두 다 그러하듯이.

 

베가스에 도착하니 친구가 고맙게도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 주었다. 

고맙다는 말에 친구는 "당연히 나와야지"라고 했지만, 그래도 왠지 그 마음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외로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호텔에는 그 다음날 체크인하기로 예약을 해 놔서, 

이 날은 친구집에 도착해서 짐을 얼른 풀고 가까이에 있는 일식집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 할 말이 참 많았지만 어색하지 않고 즐거웠다.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다소 긴장하고 있었는데 친구 덕분에 그런 마음도 많이 사라졌고..

두세 시간 얘기를 하다가, 시차도 있고 조금 피곤한 탓에 너무 늦지않게 집에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nightview.jpg

 

(친구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차 안에서 하나 찍어 봤다)

 

다음날 일어나서는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와 있어서 호텔 수영장에서 만나 가볍게 낮술을 마시고 수영을 좀 했다.

운동에 있어서는 까다로운 편이지만, 나는 수영을 참 좋아한다.

팀스포츠보다는 혼자서 뭔가에 집중하는 걸 선호하는 내 성격에 알맞기도 하고 

일련의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으로는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제대로 된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수영장 속에서 천천히 근육을 쓰고 몸을 앞으로 움직이며 땀을 흘리다 보니 어느덧 외로운 마음은 조금씩 가시고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모습을 드러내듯이 의욕이 조금씩 스물스물거리며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아, 올해도 다시 베가스에 왔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늘 긴장되고 떨리기는 하지만, 분명 나한테 +EV일 거야."

"그렇지만 토너먼트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5번에 1번 입상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꼭 참가를 해야 할까?"

"아냐, 그래도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없는 플레이를 하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한번 해보자. 안되면 뭐 어때, 이것도 다 경험이고 좋은 공부가 되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뭔가 해보고 싶어졌다.

어젯밤부터 오늘 낮까지 충분히 긴장을 풀고 쉬었으니 

이젠 호텔에 돌아가서 뭐라도 준비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장을 나서서 마른 수건을 집어들고 몸에 있는 물기를 대충 닦아냈다.

여자와 수영장에서 노닥거리는 건 물론 기분나쁜 일은 아니지만

난 수영을 하러 베가스까지 온 것은 아니니까.

수영하기 전에 마신 모히토의 맛이 아직까지 입안에 남아 쌉싸름하게 느껴졌다.

 

vpool.jpg

 

(수영장에서 만나서 이 친구랑 술 한잔 같이 하고 수영 조금 하고 나왔다)

 

호텔로 향하는데 뜬금없이 친구 하나가 거의 2달만에 이런 사진을 보내면서 "잘 지내?"라고 물어봤다.

 

pool2.jpg

 

나는 잘 지낸다고, 베가스에 와 있다고 하고

지방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어야 가슴이 커진다고 짧게 답장을 했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왠지 미안해서 답장을 하나 더 보냈다.

"야 오랫만에 연락 닿으니까 반갑다 ㅎㅎ 어디 놀러 갔나봐?"

 

그랬더니 30분쯤 뒤에 이런 답장이 하나 날아왔다.

"그래서 별로라구? 나 돈모아서 가슴 수술 할거야 ㅠ_ㅠ"

 

한숨을 한번 쉬고 적당한 시간 뒤에 적당한 내용으로 답장을 했다. 

내가 조금씩 포커에 대한 자신감을 찾아 가듯이

이 친구도 자신의 몸매에 대해 조금 더 자신감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호텔 방문을 열고 짐을 푼 다음 심호흡을 두세 번 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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