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로드가 너무 늦어져서 미안 왼손 뼈 일부가 거의 부서지다시피 한 상황이라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게 쉽지 않았어 그래서 폰으로 시간 내서 조금씩 썼던 걸 오늘 겨우 마무리해서 올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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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4 19:01:31

 

 

업로드가 너무 늦어져서 미안

왼손 뼈 일부가 거의 부서지다시피 한 상황이라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게 쉽지 않았어

그래서 폰으로 시간 내서 조금씩 썼던 걸 오늘 겨우 마무리해서 올리게 되었음

 

브금은 내가 전업을 시작할 때쯤 많이 들었던 노래라서 생각나서 같이 올림 ㅎㅎ

 

******

 

그 당시에 나는 헤접 싯앤고를 주로 플레이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때까지도,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동안 플레이를 해온 게임의 포맷이지만, 대단히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따져 보자면 여러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과 나 둘이서 팟 하나, 게임 하나를 놓고 매 순간 싸워가는 편이 내게는 간단명료하고 또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6맥스나 9맥스 게임에 비해서 마지널한 결정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고, 그런 부분에서 엣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또 헤접 캐시와는 달리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승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싯아웃을 해서 범헌팅을 할 수 없으며, 게임의 길이 역시 평균적으로 10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승부가 난다는 점은 나를 한없이 매료시켰다.

 

샘플이 충분히 크지는 않았지만, 포커트래커에 따르면 그 시절의 내 ROI는 6-8%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이인이 낮은 $30, $50 게임에서는 8% 정도였고, 보다 높은 $100, $200에서는 6-7% 정도가 나왔다.  그러니까 주먹구구식으로 계산을 하자면, $200 바이인의 헤접 싯앤고를 플레이하면 한 게임당 $12-14 정도를 버는 것이고, 이 게임을 400-500번 정도 플레이하면 목표로 잡았던 여행경비를 벌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400에 지나지 않는 뱅크롤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플립을 두 번 지면 뱅크롤은 0이 되고, 그러면 나는 1500%이 아니라 무한대의 ROI를 찍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헤접싯앤고에서 플립을 두 번 지는 것쯤이야 마치 하품을 하면 필연적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처럼,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라이브에서 플립 아닌 플립으로 날린 14k가 더없이 아쉽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이런 종류의 아쉬움을 가슴 한켠에 묻어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포커는 결국 뱅크롤의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의 투자에서 자본금의 액수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포커에서도 뱅크롤은 무척 중요하다.  무한한 뱅크롤이 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들을, 뱅크롤이 유한하고 또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없이 저지르는 포커 플레이어들을 나는 수년간 셀 수 없이 보아왔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단기간에 $400을 $6k로 만들겠다는 당시의 내 모습이 정확히 그랬고, 그 이후로도 뱅크롤의 측면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을 수도 없이 반복해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식은땀이 흐른다.  ROI와 게임수와 바이인을 곱한 값이 단기간의 수익과 일치한다면 참 좋겠지만, 그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테고, 실제로는 50가지도 넘는 이유로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객기를 부렸을까?  아마도 아무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계획은 아무런 생각과 고뇌가 없어도 충분히 세울 수 있으므로), 별 고뇌없이 객기를 부린 것이 결과론적으로는 많은 고뇌를 거쳐 전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의 역할을 했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을 할 때면 왠지 모르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구절이 떠오르며 머릿속에 악화 (아마도 내 초기 뱅크롤인 $400)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양화 (아마도 다른 모든 포커 플레이어들의 뱅크롤의 총합)를 열심히 구축해 내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어쩌면 나는 포커 플레이어보다는 판타지 소설 작가가 되어서 삼국지와 SF를 결합하는 쪽이 더 +EV가 아니었을까 하는 묘한 불안감과 함께.

 

어쨌든, 별 생각이 없던 그 당시의 나는 계획을 세우고 뿌듯한 마음에 싱글벙글거리며 헤접싯앤고 그라인딩을 시작했다.  일본에 가면 장어덮밥과 와규 중에 뭐부터 먼저 먹지? 따위의 지극히 에피쿠로스적인 고민을 일삼으며, 일단은 $20-30 바이인 헤접싯앤고를 꾸준히 플레이해 보기로 했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내가 나름대로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계획에서 실제로 현실적인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만 명료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와같은 실수는 두번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결정들을 후회하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도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저렇게 객기를 부리며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역시 다분히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실수임에 틀림없지만, 당시의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동기부여 및 계기였으니까.  인생이란 지나고 나서 술회할 때, 즉 이미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린 일들에 대해 얘기할 때는 누구든 팔걸이 의자에 앉아 예지력 돋는 멋들어진 소리를 하며 가치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건 현재를 살아가는 당사자들에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배리언스도 없다면,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가 그저 무한히 투명하고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것이라면, 그런 인생은 사실 얼마나 시시하고 무미건조할까? 

 

아마도 누구도 결말에 짜릿한 반전이 있는 책 따위는 읽으려 하지 않겠지.  누구도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멋들어진 결과를 성취할 수 없는 일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인생들을 살아가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그다지 진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 누구도 첫사랑따위는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정말 별것 아닌 일들을 계기로 다시금 떠오르고, 또 그만큼 과거의 상처를 되새김하는 게 첫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걸 알게 되고도 그걸 굳이 감행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스릴러물도, 실수도, 역사의 진보도, 그리고 첫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끔찍히도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가끔씩 객기도 부리면서, 그리고 나중에 회상해 봤을 때 머릿속에 큰 물음표가 떠다닐 만한 결정들도 내리면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 같다.

 

머릿속에 큰 물음표를 떠올리는 결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시집을 참 좋아하던 시절에는 9월이라는 단어를 보면 "푸르른 달인 9월의 어느 날"로 시작하는 브레히트의 시구가 떠오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전업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어린 자두나무라든지,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안았다는 우아하고 팔자좋은 얘기보다는 수년 전 9월의 어느 날 저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자두나무와 창백한 사랑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러나 조금만 그 궤도를 달리 했더라면 내 인생의 궤적을 통째로 비틀어 버렸을 법한 이 날의 일은 너무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400 정도의 뱅크롤로 $20-30 (레이크를 포함하면 $22-33) 헤접싯앤고를 4테이블씩 띄워놓고 치고 있었다.  친구와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약속시간 전에 한 세션을 돌리고 나갈 계획이었다.  아주 스탠다드한 플립을 몇번 지다 보니 뱅크롤이 $145 정도까지 떨어졌고, 이 정도야 역시 아주 스탠다드한 스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 미련이 없이 $33 바이인의 헤접싯앤고 4테이블을 새로 오픈했다.  뱅크롤이 $13이 남았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이 정도에 연연하는 인간이 애초에 진토닉을 마시면서 6천불짜리 호언장담을 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허드를 띄워놓고 나름 노트도 부지런히 적어가면서 열심히 플레이를 하다 보니 4테이블 중 3개에서 거의 2500-500 정도의 칩리드를 가지게 되었고, 마지막 테이블에서는 리버에서 넛을 맞추고 상대의 베팅에 시간을 잠깐 끌다가 올인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히 올인 버튼을 누르고 베팅 버튼을 눌렀는데도 올인이 되지 않고 타임뱅크만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니터 속의 칩들은 내 마우스의 클릭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황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15초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인터넷 연결이 끊긴 것이다.

 

뱅크롤을 $13 남겨놓고 야심차게 4테이블을 하고 있던 세션에서 인터넷이 끊긴 것이다.  

 

거울을 본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내 망막에 들어오는 것은, 인터넷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는 타임뱅크의 막대기 뿐이었다.  그 원망스러운 막대기와, 시신경을 통해 일방적으로 들어오는 그 일련의 신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하얗게 질려버린 나와, 중립적으로 굳게 침묵을 지키는 무선 공유기만이 그렇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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