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때의 일이다. 집으로 가던 골목길에서 내 또래의 남자 아이를 마주친 적이 있다. "어? 너 누구야? 여기 근처 살아?" " 응. 나 ㅇㅇ 학교 다녀! 너 몇살이야?" "나? 7...

mobilebanner

조회 수 3175

추천 수 26

2020.08.29 23:22:38

7살때의 일이다. 

 

집으로 가던 골목길에서 내 또래의 남자 아이를 마주친 적이 있다. 

 

"어? 너 누구야? 여기 근처 살아?" 

 

" 응. 나 ㅇㅇ 학교 다녀! 너 몇살이야?" 

 

"나? 7살!! 너는 몇살인데?" 

 

"나도 7살인데?! 와 ! 그럼 우리 오늘부터 친구하자. 이름이 뭐야?" 

 

2020년.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겐 상상도 하지 못 할 일이 그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아무나 또래라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친구와는 계속해서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즐겁게 놀았었다.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내 인생 첫 배스트 프랜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노란 브릿지 머리를 했던 내 친구...

 

한국사회는 만남의 기회가 비교적 제한되어 있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 말이 안된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항상 '집단' 의 중요성을 강조했던게 아닐까.

 

나도 많은 집단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대학생' 

'군인' 

'공장 근로자' 

'햄버거 집 알바생' 

'오프 코쟁이'

'노가다 잡부'

 

우리의 인맥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가 속한 집단 내에서 생기고 없어진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자존감에 많은 상처를 입었었다. 나는 당장 하루 먹고 하루 살 걱정을 하며 학교에 다니는데.. 이놈의 학교는 전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뭣 모르는 놈들 투성이었다.

 

"와 .. 저 차좀봐 누나. 얼마나 잘 살길래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걸까" 

 

"응? 뭐 교수 집안 얘겠지. 교수도 잘나가는 교수는 돈 엄청 벌어" 

 

1차 전형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러 서울에 있는 학교까지 올라 간 날, 나랑 똑같이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벤츠에 올라타는 걸 보곤 누나한테 물었었다. 내가 이런 집단에서 적응하지 못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가슴속에 의문을 품고 학교를 다녔었다.

 

'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는 또 하나의 잘 만들어진 가면을 쓰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엘리트인것 마냥... 니들과 나도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그렇게 항상 남들을 의식하며 속이고 다녔었다. 

 

1학기를 다니고 휴학을 신청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대학생 신분을 속이고 들어간 공장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빚에 쪼달리며 동생에게 매일 담배를 얻어 피우는 놈부터 

온 몸에 문신이 가득한 형님. 

내 엄마 뻘의 이모들까지.. 

이 집단 내에서 나는 약간의 우월감 마저 느꼈었다. 

 

'당신들과는 달라'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내 수준이 그들과 같았기에 마음이 편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차피 학교로 돌아가봤자 다시 쭈그리 인생일텐데 도대체 집단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교만에 빠지게 한단 말인가. 

 

방학 때 마다 해외여행. 인스타에 올라오는 멋진 사진들. 내 주변 모두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젠 다 싫어...' 

 

 

 

지난 글들에서 이미 풀어 냈 듯 지금 내 상황은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이다. 현재 내가 속한 집단이라고는 인력사무소 하나가 전부다. 

과거에 쌓아온 수많은 인맥들은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내 가면이 벗겨지자 자연스레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런 나한테도, 얼마 전  새로 친구가 생겼다. 

 

우리의 첫 만남은 모텔 공용 식당에서 이루어 졌다. 

여느 때와 같이 정수기에서 물통에 물을 채워 넣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안뇽 하세요?" 

 

'뭐야.. 나들이였냐 밤새 아랍어로 기도해대던 놈들이' 

 

" 아, 안녕하세요 ^^" 

 

"오눌, 일, 갔어요?" 

 

"에.. 네. 쿠팡 나갔어요 오늘" 

 

"쿠팡? 이거?"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 쿠팡 어플을 내게 보여줬다. 

 

"네 거기요. 물류창고라 비오는 날에도 일 할 수 있어서 좋은거같아요" 

 

"나.. 이거, 이거 좀 도와 줘요. 몇 살 이에요?" 

 

'뭐야 이새끼들 ;' 

 

"XX살이요" 

 

"아 ! 나는 43살. 동생. 맞죠? 동생." 

 

"음.. 동생 맞아요. 이름이 뭐에요?" 

 

"살림. 살림 이라고 불러요. 동생." 

 

살림은 쿠팡 앱으로 물건을 사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였다. 

도와달라길래 들어가보니, 중요한 본인 인증 부분에서 막혀서 진행이 되질 않았다. 

 

"아 .. 이거 인증이 안돼서 힘들것같네요. 인증 알아요 인증?" 

 

"인..중?" 

 

한참을 이리 해보고 저리도 해봤지만 이 외노자가 쿠팡으로 물건을 사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 그냥 제가 대신 사 드릴게요. 돈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쿠팡 앱으로 구매하고, 물건은 살림 주고. 어때요?" 

 

"진..짜? 동생 고맙다. 진짜 고맙다 동생." 

 

이 후로 일주일 가량을 시달렸던 것 같다. 그냥 물건만 대신 사주면 될 줄 알았는데 자기가 사려는 전동 스쿠터의 스팩들을 하나하나 나한테 따져 묻는 살림에게 나는 조금씩 질려갔다. 

 

"이거, 안좋아요. 뻬터리 안좋다. 더 좋은거 없어요?" 

 

"하아.. 저도 잘 모르겠는데..." 

 

결국은 불발. 정말 결제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분명 50만원이었을 가격이 구매를 하려하자 62만원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해외 배송이라 배송비만 12만원이 붙는 것이었다. 

 

"살림, 이거 배송비가 12만원이에요. 돈 부족해요 못사요" 

 

"동생 돈 없어?" 

 

"저 2만 8천원 있어요 살림이 보내줘야 돼요. 이거 살거면 12만원 더 보내줘요" 

 

" 비싸 비싸. 이거 너무 비싸." 

 

'아니 나보고 어쩌라고 어오 시간만 날리고 내일 일 도 가야되는데 ' 

 

"살꺼면 저한테 연락 해요. 시간만 날렸네. 저한테 나중에 고기 사줘요 알겠죠? 저도 고생 했으니까" 

 

쿠팡에는 쿠팡 캐시로 물건을 구매하면 캐시백 형태로 5%의 금액을 돌려준다. 사실 이걸 노리고 도와주려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불발로 끝나버렸고... 그 대신이라고 부르긴 뭐하지만 이들이 이슬람교도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다는 점을 생각해 고기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양고기나 소고기를 얻어 먹을 수 있겠지. 이정도면 뭐 나도 만족해. 좋은 일 했다 치고.. . 

 

"하하하 고기. 알 겠어요. 동생 고기 사준다. 약속한다." 

 

그 뒤론 나도 정신없이 일만 나갔던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 깨닫게 되었다. 

이들과 나는 친구라고. 

지금 내 친구는 타지키스탄에서 온 이 사람들 뿐이라고. 

 

"오늘 일 나갔어요?" 

"밥 먹었어요?" 

"이거, 빵. 빵 먹어요." 

 

마주칠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음식을 권했다.

이게 한국 사회에서 가능이나 한 일일까. 

하루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와이프와 3명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낯선 타국 땅에서 하루 7만원이라는 돈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살림. 

그에게서 7살 어린 시절 만났던 내 친구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낯설지만 어딘가 모를 순수함으로 뒤덮힌 이 남자를

한 때나마 이용하려 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들이는 소리에 나가 보니 살림이 문 앞에 서있었다. 

 

"동생. 고기 사왔어요. 이따가 내려 와요." 

 

13170DB9-559C-47D6-AF7C-596872BFBE43.jpeg

 

DA6BB1AC-6A48-4919-B04E-28CEE98F810D.jpeg

 

"살림! 땡큐 땡큐. 진짜 고기 사왔네? " 

 

"그럼 ~ 약속 지켜요 저 . 이따가 부르러 올게요" 

 

우리는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살림,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면서요" 

 

"먹으면 안돼. 그래서 항상 물어본다. 돼지고기 들었냐고. 항상 물어보고 고기 먹는다" 

 

"근데 만약 그 사람이 거짓말해서 돼지고기가 들었는데 안들었다고 하면요?" 

 

"이슬람에선 거지말 하면 안된다. 우리 나라에서 그러면 그 사람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 이렇게 된다." 

 

"... 지.. 진짜요?" 

 

"여기서는 안그래 하하. 동생 쫄지마. " 

 

"진짜 살림 나라에서는 그래요..? 거짓말 아니고?" 

 

"(진지) 진짜 그런다. " 

 

 

연 소득 1000달러 수준의 타지키스탄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나라일 것이다. 지독하게도 가난한 나라... 

그래도 마음만은 풍족한 나라. 

알아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자살률도 현저히 한국에 비해 낮겠지. 

 

"가족들 보고 싶지 않아요?" 

 

"가족 보고 싶어요. 나 제일 큰거 아들. 그 다음 딸, 그리고 또 한개 있다. " 

 

"아, 고향에 애가 셋이나 있구나. 사진 있어요?" 

 

"사진, 있어." 

 

47AA2991-E8D5-41F9-BE96-DF0B29D54A36.jpeg

 

"와 ... 다 잘생기고 귀엽다." 

 
"하하. 동생. 동생은 와이프 없어?" 
 
".... 없어 없어. " 
 
"왜 없어? 터지키스탄에선 18살이면 다 결혼 한다" 
 
'내가 없고싶어서 없냐.. 조선시대였으면 나도 결혼 했겠지 망할 대한민국 연애하기 조온나게 힘들지 그래 ' 
 
"한국에선 여자들이 까다로워. 돈, 얼굴, 키, 남자한테 바라는게 너무 많아. 나는 키도 작고 돈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았고 그래서 없어" 
 
우리는 이런 일상의 대화를 반복했다. 
소소한 행복이 나와 살림 사이 공간을 채워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날 먹었던 양고기는 맛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린내에 적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밥도 없고, 빵과 양파, 마늘이 전부라 내 입맛에는 맞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그들 입장에서 그들 문화 대로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고 있노라니 나도 한 명의 타지키스탄인이 된 것 같아 신기했다. 
유목민?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될까. 
 
비릿했던 양고기를 억지로 목구멍 아래로 씹어 넘겼다. 
이들을 이용하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이제는 내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살림에게 감사하며. 
 
"살림, 타지키스탄 가도 되요?" 
 
"오. 지금은 근데 코로나 비루스 때문에 안된다." 
 
"끝나면 같이 가도 되요?" 
 
"오케이 오케이. 언제든 와라. 환영한다 동생" 
 
아아 꼭, 가고싶어. 살림의 나라에. 
꼭 가보고 싶어.
 
 
 

 

 

 

스크랩

bookbanner

댓글 수

 

26

2020.08.29 23:26:12

2020.08.29 23:28:27

2020.08.29 23:28:55

2020.08.29 23:34:35

2020.08.29 23:38:57

2020.08.30 00:20:27

2020.08.30 00:21:58

2020.08.30 00:41:48

2020.08.30 01:02:31

2020.08.30 01:21:51

2020.08.30 02:08:03

2020.08.30 02:51:59

2020.08.30 05:37:04

2020.08.30 10:38:12

2020.08.30 12:12:53

2020.08.31 05:10:30

2020.08.30 17:49:47

2020.08.30 21:47:56

댓글 작성은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클릭 시 로그인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글 수

 

4,760

제목

글쓴이날짜
2024-04-30
2024-04-27
2024-04-21
2024-03-07
2024-02-09
2023-12-19
2023-10-01
2023-09-05
2022-10-28
2022-05-04
2022-02-08
2019-05-17
2020-08-30
2020-08-30
2020-08-29
2020-08-29
2020-08-28
2020-08-27
2020-08-27
2020-08-26
2020-08-26
2020-08-25
2020-08-25
2020-08-25
2020-08-24
2020-08-24
2020-08-22
2020-08-22
2020-08-20
2020-08-19
2020-08-18
2020-08-18

검색

Copyright 2014. Pokergosu.com all rights reserved.

SUPPORT : [email protected]

한국 지역 게시글 중단 요청 : [email protected]

마케팅 대행사 - (주)에브리봇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369 12층

POKERGO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