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생활도 자리 잡아가고 있어. 월 30만원 짜리 모텔 장기방에 묵으면서 주 4~5회 노가다판에서 돈을 벌고 있는데 지금은 빚 갚는거 말고 뚜렷한 목표가 없는게 문제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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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4 01:01:48

이제 슬슬 생활도 자리 잡아가고 있어. 

월 30만원 짜리 모텔 장기방에 묵으면서 주 4~5회 노가다판에서 돈을 벌고 있는데 지금은 빚 갚는거 말고  뚜렷한 목표가 없는게 문제네. 

 

반생이, 폼, 다루끼 등등 전부 처음듣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원래부터 일머리가 없는 나는 매일같이 욕을 얻어먹으며 일하고 있다. 

한국 건설판 내 생각에 20년 뒤면 싹 다 외국인한테 먹힐거야 

일 나가면 내 바로 위가 50대니까 .. 신병 전입 왔는데 생활관에 행보관들만 15명 되는 기분.  

그래도 살아나간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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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서 5시사이. 순간 내가 잠 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꿈까지 꿧다. 

'어떻게든 잘 수는 있네' 

아마 한시간도 채 못잤을 것 같다. 그래도 잠이 들 수는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견딜 수 있었다. 겨우 첫 날 이기도 했고, 다음날이면 뭐라도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바로 시청에 찾아 가는것. 

내가 알아 본 바로는 사회복지과에서 노숙자들을 노숙자 쉼터로 안내 해 준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이래서 길거리에 노숙자가 없었구나. 

 

핸드폰 전원을 켰다. 베터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시뻘건 색으로 변해있었다. 지도앱으로 확인 해 보니 목포역에서 목포 시청까지는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 슬슬 출발 해 볼까' 

 

뭔가가 이상했다. 

일이 너무 잘 풀린다는 느낌 

어딘가 어긋나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 

데자뷰와도 비슷하고, 꿈 속에서 꿈을 자각한 상태와도 비슷했다. 

 

'뭐지? 뭐가 잘못됐지?' 

 

아..... 

그렇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몇 달간 계속 된 죽음의 여행 기간 동안 당연하게도 요일 개념은 내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매일밤 ' 내일은 꼭 죽자' 다짐하며 보내 온 사람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중요할게 뭐가 있었겠는가.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은 당연하게도 시청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내가하룻밤을 더 길거리에서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좆됐다. 하루도 이렇게 힘든데 이걸 한 번 더해야되네' 

머리를 굴려본다. 어떻게든 살아야돼. 길거리는 체력 소모가 너무 커. 어디 들어갈만한 건물 없나? 모기만 피할 수 있으면 돼. 생각해라. 생각하는거야. 

그리고 나는 문제의 원인에서 해답을 찾았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교회가 문을 연다' 

내가 무슨 장발장인가 싶었지만 이미 그딴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엄마 말로는 내가 모태 신앙이라고 했다. 군대에서도 천주교 군종병을 맡았었고 세례까지 받았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신앙심이 생기질 않아 전역 하고 나서 부터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교회는 내가 살아날 구명줄이자 길거리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였다. 

 

몹시도 배가 고팠다. 역 앞 편의점에 들러 우육면을 구매하니, 이제 남은 돈은 1120원 뿐이었다. 

편의점 atm기 위에 누가 먹다 남긴 생수병이 올려져 있길래 그대로 가지고와 라면과 함께 먹었다. 라면 하나로 배를 채우는데 이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검정 고무신 거지들이 라면을 훔쳐 먹을 때 처럼 정말 게걸스럽게 면발을 빨아들였다.  당장 뭐든 위장 속으로 넘길게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아직 예배 시간까지 한참 남은 오전 5시경. 

미리 정찰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교회로 향했다. 

교회는 정말 바로 코앞에 있어서 금방 도착 할 수 있었다. 

 

'교회 한번 엄청 크네' 

 

그 명성에 맞게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교회였다. 문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부에서 접근금지 비슷한 명령이 나와 출입 할 수 없다는 공고장이 대놓고 써 붙여 있었다. 이곳은 신천지 교회였다. 

나는 다른 교회를 찾아야 했다. 

 

근처를 둘러보자 딱봐도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 마냥 그 건축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당한 고지대에 위치했는지 온통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  

다 올라와 이제 건물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속의 그 건물이 맞다. 다만 이게 아직 완전히 완공되지 못한 건물이라는 것은 도착하고나서 알았다. 가톨릭 성지에 조성한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 부지 곳곳에는 건설 자재들이 놓여져 있었고 문은 닫혀 있었다. 

 

'아름답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0E56525F-380C-46DB-85A9-685FDD0D6994.jpeg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했다. 

글쌔, 과연 그럴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건물을 보고 울어보는건 정말 이게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만큼 건축학적으로 완벽한 건물이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곳에 계시지 않을까. 

 

나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물론 여차할때 노숙을 하기 위함이었다. 본당의 문은 잠겨져 있었지만 사진 왼쪽편에 보이는 타워 형태의 건축물은 쇠창살로 만들어진 철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나선형의 내리막길을 따라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벽면에 그려져 있다.

길을 따라 쭉 내려가자 제일 아래층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동상이 놓여져 있었다.  성호를 긋고 주기도문을 속으로 불러본다. 그리곤 기도했다.

 

 ' 살아 남을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다시 본당 부분을 살펴봤다. 

그리곤 잠겨져 있지 않은 옆문을 발견했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거겠지..?'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에는 예수의 마지막을 그려놓은 최후의 만찬부터 각종 관련 그림들이 붙어져 있었다. 그리곤 거대한 감시 센터 비슷한 공간이 펼쳐졌다. 카메라에서 찍힌 영상이 하나의 큰 화면에 분할되어 송출되고 있었다. 이곳이 뭐하는 장소인지 짐작 가지 않았지만 워낙 큰 성당이기에 이런 공간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차분히 둘러본 결과 여기서 다른 구역으로 넘어 갈 수도 있어 보였지만 그러면 카메라에 내가 찍히게 된다. 여기는 사각지대인지 카메라가 없어보였다. 노숙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시간은 오전 7시쯤.  바닥에 눕기에는 흙먼지가 많아서 창가에 난 11자 형태의 공간 위로 올라갔다. 

한 사람이 눕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밖의 관광객이 나를 볼 수도 있었기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이때 잔 3시간정도의 수면이 남은 노숙기간을 통틀어 가장 깊고 편안한 수면이었다. 

 

나는 꿈을 꿧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와 관련된 꿈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뭐가 그렇게 미안했던건지. 다른 꿈이 그렇듯 세세한 기억은 휘발유처럼 날아가버려 감정의 잔향만이 남아있는 그런 꿈이었다. 

이내 처음보는 아저씨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저기요, 저기요!" 

 

"ㅇ엇.. 아 죄송합니다 " 

 

"아저씨 누구세요? 와 나 깜짝놀랐네 진짜.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돌아가세요" 

 

"네. 잠깐 눈만 붙일 생각이었어요 죄송합니다" 

 

"뭐하시는 분이에요?" 

 

"아.. 여행왔어요. 다른데는 잠겨있는데 여기는 열려있길래 들어왔다가 잠깐 잠들었네요" 

 

"허 참 ... 천주교 교인이에요?" 

 

"네. 세례도 받았습니다." 

 

"후.. 빨리 나가요 뭐 이런 사람이 다있어" 

 

쫓겨나긴 했지만 뭐 상관 없었다. 이미 자존심은 다 버렸기에.. 그저 잠깐이라도 편히 잘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시간을 확인해보자 거의 11시가 다 됐었다. 예배가 시작할 시간이다. 

근처 다른 성당에 들어가야지 하고 마음 먹고는 문 앞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이곳도 다른 곳처럼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가 없으면 출입 자체가 불가능 했다.  

 

나는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며 길가에 버려진 마스크를 찾아 해맸다. 

예전에 기사를 본 기억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길거리에 버려진 마스크가 2차 감염을 일으킬수 있다 뭐 어쨋다 하는 기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버려진 마스크를 찾을 수 있었다. 상태도 생각보다 깨끗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바로 마스크를 착용 했다. 그리곤 근처에 보이는 장로회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는 이미 시작했는지 2층에선 목사님의 설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1층에도 따로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은 지금 사용하지 않는 듯 보였다. 자리에 앉아 놓여진 성경책을 펼쳐 들었다. 

 

" 내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때 읽은 성경은 정말 .... 뭐랄까.. 글로 옮기지 못하겠다. 

창세기부터 누가복음근처까지 찾아 읽었는데.. 도저히 이 감각을 글로 옮길 수 없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 

 

한참 성경을 읽고있는데 왠 귀여운 여자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건냈다. 

 

"안녕하세요!!" 

 

"ㅇ응? 어 .. 그래 ㅎㅎ " 

 

" 혼자 오셨어요오?" 

 

"응. 잠깐 시간좀 보내려고." 

 

"해헤 저는 엄마랑 왔어요!" 

 

"그래? 좋겠다." 

 

내 꼴을 봐.. 더럽고 냄새나잖아.. 근데 너는 왜.. 

 

"아저씨 오늘이 무슨날이게~요?" 

 

이때 사실 울음을 참고 있었다. 방금까지 읽은 성경의 구절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 부모에 대한 불효, 자살 하려 했다는 사실의 죄책감.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어준 눈 앞의 이 꼬마.. 

 

"으..응? (울먹) 잘.. 모르겠는데?" 

 

"헤헤 오늘은 내 생일이에요!!" 

 

"와아 좋겠다. 재밌게 잘 보내" 

 

"감사합니다아~ 해헤해" 

 

꼬마는 신이 났는지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남겨진 나는 온통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 속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예배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2층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쥐곤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생각할게 많아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형제님?" 

 

"네?" 

 

" 처음 오셨나봐요" 

 

" 네 뭐 .. 잠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기도따위 안했지만 그렇게 말해야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답했다. 

 

" 저기 이거 딱 하나 남은건데 입맞에 맞으실랑라 모르겠네"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김밥 한 줄을 건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밥을 베어 무는데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억제 할 수없는 감정의 폭포가 나를 덮쳤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맛있다고 시발 .... 맛있어... 

 

장발장은 교회의 은식기들을 훔쳐 나갔다가 잡히게 된다. 

그리고 신부는 자기가 준 선물이라며 그를 풀어주고 용서해준다. 

나는 이제 그 순간 장발장의 기분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장발장이었다. 

별거아닌 김밥 하나가 나를 바꿔놓았다. 

세상에 대한 감사. 무조건 적인 감사. 

 

어쩌면 신은, 수 많은 얼굴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옆집 아주머니부터 활기찬 꼬마아이까지.. 

 

니체는 분명 틀렸을거야. 아니, 틀렸어. 신은 존재한다. 

반드시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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