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을 쓰는 이유를 굳이 말해보자면, 근래에 우울하던 나에게 방금 뭔가 영감을 주는 생각과 감정들이 떠올랐는데,이대로 얽히고 설킨 상태로 냅두면 그냥 그대로 그 깨달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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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5 01:09:32

먼저 이 글을 쓰는 이유를 굳이 말해보자면, 근래에 우울하던 나에게 방금 뭔가 영감을 주는 생각과 감정들이 떠올랐는데,

이대로 얽히고 설킨 상태로 냅두면 그냥 그대로 그 깨달은 기분만 가져간 채 잊어버릴 거 같아서 글로 정리를 해두고 싶어서 씀.

지난 주 추석에 가족들 얼굴을 보고 구미로 다시 올라왔어.

사실 나이 30줄에 가까워지니 나에게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마치 달과 지구와 같은 느낌이 들더라.

완전히 멀어지지도, 완전히 가까워지지도 않게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상대적으로 부모님 쪽의 일방적이긴 하지만 안부전화가 있고, 특별한 일이나 얘기할 거리 있으면 가끔 내가 전화 걸고,

가끔 시간 많이 남거나 이렇게 명절에 찾아가서 얼굴 좀 보고 딱 그 정도?

그리고 이 상태는 나에게는 적어도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상태야.

아마 이제는 어린 시절처럼 부모님 집에 들어가서 산다면 지금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이렇게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둔다고 해서, 그게 부모님을 싫어한다거나 업신여긴다거나 그런 건 아니긴 해.

오히려 이번 추석에 그래도 내가 아는 선에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서 많이 충격을 먹었고 나 스스로 반성했지.

뭐 병걸렸다 이런 얘기는 아니고, 친척들끼리 간단히 얼굴 보는 자리에서 얘기하다가 아버지가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 단순한 얘기가 나에게는 꽤 충격이었는데, 첫번째로 아들이었던 내가 몰랐던 걸 사촌의 남편이 먼저 알고 있었다는 게 첫번째였고,

두번째로 그냥 그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는 자체가 충격이었어.

충격 비율로 따지면 한 20:80이 아니었나 싶네. 첫번째야 솔직히 내 성격상 사람한테 관심 없는 타입이라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어쨌든 본래 아버지가 몇 년 간 러닝을 꾸준히 하고 있는 걸 알고 있긴 했어.

근데 20km나 뛸 정도의 레벨에 도달했다는 건 진짜 꿈에도 상상 못했거든.

최근 근 5년 동안 내가 아버지 보면서 든 느낌은 '시들어짐'이었지.

우리 아버지는 원래 씨름부 출신이었어. 그래서 막 키가 엄청 크고 그런 건 아니지만 메시마냥 진짜 옹골찬 느낌이었거든.

근데 어느 순간 우락부락한 팔 근육도 빠지고 그 두껍던 허벅지도 작아지고 흰머리도 나고 이러더라고.

그래서 그걸 보면서 '결국 다들 이렇게 늙는 거구나' 이런 생각만 했지.

그랬는데 갑자기 20km?

내가 물론 러닝을 막 꾸준히 하지는 않아.

그래도 나름 러닝복이랑 신발도 사고 커뮤니티에서 정보도 찾아보고 뛸 각이 되면 뛰는 사람이라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거든.

좆반인은 당연히 20km는 무슨 3km도 아마 뛰면 뒤질 테고

나같은 찍먹충 입장에서도 10km만 되도 심장 안 터지고 살아만 있어도 다행인 수준인 레벨인데

나이 60 다 되어가는 사람이 20km를 완주? 진짜 옛날에 가졌던 그 느낌이 확 뒤집히더라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나이에 그 정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예 드물다고 할 수는 없잖아?

솔직히 생로병사의 비밀 이런 거 슬쩍 보기만 해도 나이 80 먹고 보디빌더인 사람도 나오고 이러잖아.

어찌보면 주위에 찾아보면 충분히 나올 수는 있는 사람이긴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버지가 그랬다는 사실, 그 대상이 바뀐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되게 영향을 주더라고.

물론 우리 아버지가 똑똑하거나 이러지는 않아. 그리고 사람이 되게 가벼운 느낌이야.

솔직히 나에게 평소에는 그냥 친근감 있는 술친구 아재 느낌이지.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홀로 우뚝 서서 무언가를 지향해가는 그 모습 자체가 좋은 말 백 마디 보다 아들에게 더 큰 귀감이 되는 거 같아.

진짜 아버지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에 대해 새삼 깨달은 추석이었어.

하여간 구미에 올라온 이후로 '어떻게든 달리러 나가리라!' 벼르고 있었지.

물론 이런 내 불타는 의지랑 별개로 좆소 공장의 목 잔업 + 토 특근 크리 한 번 맞으니까 그냥 지난 주말은 그로기 상태...

그냥 친구 만나서 맛있는 거 좀 먹고 날씨도 선선해져서 산책 좀 했다가 유튜브 보면서 쉬었어.

확실히 좆소에서 일이야 열심히 할 수 있지만, 그 이상 내 시간까지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듯해.

하긴 애초에 내가 그런 의지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좆소갈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겠지 ㅋㅋㅋ;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잔업이 끝난 뒤 집에 도착하자마자 러닝 풀 세트 딱 갖추고 새로산 러닝화 묶으면서 뛰러 가봤어.

원래는 러닝할 때 도로따라 내려가면 있는 낙동강 강변따라 뛰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동선 개척 겸 근처 중학교에 가봤지.

여기 중학교가 좀 도심보다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는데, 껌껌한 학교에서 나름 도심 풍경보면서 뛰니까 나쁘지 않더라.

한 3km 뛰고 집에 헉헉거리면서 돌아왔어. 얼굴 벌개진 채로 냉수샤워 조지면서 거울을 봤지.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의 덩어리가 생기더라고.

'결과는 설정만 해두는 것, 목매일 필요는 없다. 결과는 그저 얻으면 좋은 사이드 디쉬일뿐, 그 결과를 위해 설정한 과정 자체를 사랑하자.'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이런 생각을 그 때 문장으로 딱 떠올린 건 아니야.

그냥 이런 뉘앙스의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굳이 정리하자면 이렇게 축약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마 기본적인 골격은 요한 크루이프의 어록인 '과정 없는 결과는 무의미하다. 결과 없는 과정은 지루하다.'에서 변용되기도 했고,

지금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생의 모토에서 영감을 얻은 거 같기도 해.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롤하는 친구들은 알겠지만, 롤이란 게임에는 등급을 분류하는 티어가 있어.

그리고 보통 마스터 티어 이상 정도가 되면 이젠 노력의 레벨이 아니지.

내 생각에는 평범한 피지컬, 뇌지컬 가진 사람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영역이 최대가 다이아1인 거 같아. 아 물론 지금은 더 높아졌을 수도 있고.

하여간 내가 3년 전에 랭겜 접었을 시점에 최고 티어가 다이아1 승급전이었어.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내 한계점을 느끼고 롤을 접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그 티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근데 이 친구가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은 날에 우연히 직장 동료들이랑 티어 얘기가 나왔어. 나는 당당하게 내 티어를 말했지.

바로 자기는 그마라고 하더라고. 그랜드마스터면 그 많은 롤 인구 중에 1000명 안에는 든다는 얘기야.

그냥 오줌을 지려버렸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거야.

하여간 게임 재능에서는 나와 그 친구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거라 게임과 관련된 얘기는 그 친구 얘기를 꽤 집중해서 듣는 편인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나는 절대 이기고 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한 판단 하나하나에 옳고 그름에 집중할 뿐이다."

만약 그냥 지나가던 브실골딱 아무개가 이 말을 했으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겠지만, 확실히 이 친구가 하니까 무게감이 있어.

그런 거야. 이게 결국 게임의 본질인 거야. 결국 모든 게임은 기대값이 존재하고, 결과와 최선의 판단은 항상 일치할 수 없는 거지.

여하튼 적어도 나와 가치관의 방향성이 맞아서 꽤 잘 맞는 친구야.

효율을 우선시하는 것도 그렇고, 일할 때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자세도 그렇고.

점심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일 얘기 하고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둘 다 일중독이냐고 정신 나갔다고 얘기 듣는 수준이지.

다만 가치관이 비슷하지만 유일하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딱 하나가 있는 거 같아.

그 친구는 항상 최고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고, 나는 어제보다 나은 나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라는 점.

위에서 말한 '결과와 최선의 판단은 항상 일치할 수 없다'라는 명제를 가장 잔인하게 보여주는 게임이 나는 역시 포커인 거 같아.

그리고 다른 게임은 질 지 몰라도 이 악마의 장난 같은 카드 게임 하나만은 내가 그 친구보다 잘할 수 이유가 있다면

결국 저 단 하나의 가치관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해.

이건 인생에서 뭐가 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야. 다만 어떤 영역에서 더 유리한가? 더 불리한가?의 차이라 생각해.

만약 롤이나 스타같은 대전 게임에서 나의 가치관은 결국 내 수준이 올라가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단점일 뿐이야.

이영호, 이제동 같이 미친 승부욕으로 24시간 중에 16시간이나 자신의 하루를 주 7일로 갈아넣는다? 저런 건 내가 할 수는 없는 영역이니까.

하지만 포커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게, 결국 포커에서는 그냥 그 어떤 욕구도 기대값 관점에서는 무조건 손해인 거 같아.

겁을 내서도 안 돼. 하지만 자신감이 넘쳐서도 안 돼. 내가 느낀 포커는 그렇더라고. 이게 다른 대전 게임과 포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생각해.

해야할 자리에서는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할 자리에서는 하지 말아야해. 불쑥 손이 나가는 걸 멈추고, 두려워 손이 가지 못하는 자리를 가야해.

정말 어렵고 힘든 게임이야. 너무나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게임이지만, 거기서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움직이면 안되는 게임.

냉철한 계산과 정보로만 최선의 기대값의 판단을 도출해야하는 게임. 하지만 그 옳음이 반대로 뒷통수를 치고 나를 아프게 하는 게임.

그럼에도 내가 포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나의 가치관과 잘 맞고, 또한 나의 가치관이 가장 유리한 게임이기 때문일거야.

내가 아직 모르는 정말 넓은 세계가 있고 아직도 나 자신과 발전하며 함께 나아갈 곳이 있다는 그 호기심과 희망 말이지.

최근에 공구를 하나 산 적이 있어. 스마트잇플레이라는 유튜버가 이제 학생 여러 명을 모아두고 줌으로 강의하는 영상이야.

이 공구를 산 이유는 말 그대로 호기심 때문이었어. 그 전에 이 사람 관련 글을 본 적이 있는데 100방에서 23bb/100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윈레이트에 도저히 안 사고 못 배기겠더라.

그리고 그 호기심과 기대감을 품고 본 영상은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나 충격적이었어.

거기에 대한 내용이나 평가는 사실 내 이전 글에 써놔서 딱히 얘기를 하지는 않을게.

어쨌든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처음에는 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했지만, 오히려 그 뒤로는 설레임으로 바뀌었어.

나름대로 홀덤 입문 후 1년 반 동안 솔버도 열심히 돌려보고, 볼륨도 무지막지하게 넣었고, 강의 영상도 꽤 챙겨봤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공부할 건 그냥 생활 패턴 교정, 세션 루틴 만들기 같이 A게임을 위한 감정 컨트롤 훈련이나,

프리플랍 레인지 디테일 공부, 세부 스팟별 솔버 돌리고 확인하기 정도로 머릿속에 데이터 우겨넣기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 홀덤이라는 게임 자체를 나는 모르고 있었더라고. 정말 알게 많이 남아있구나 느끼게 되었지.

그리고 그 충격과 설레이는 기분은 며칠 전 우승했던 WPL 토너만큼이나 짜릿하고 인상 깊었던 거 같아.

그래. 결과는 사이드 디쉬일 뿐. 이렇게 과정을 사랑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러닝과 목욕을 끝내니까 왠지 이상한 활력이 생기더라고.

내가 그런 행동력이 생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집안일들이야.

사실 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데, 피곤하면 못하게 되더라고.

약간 MBTI의 I들이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노는데 에너지가 필요한 느낌?

근데 오늘은 진짜 너무 하고 싶은 거야. 내일이 쉬는 날이었으면 그냥 집안 대청소를 조지고 싶을 정도였지.

이 정도면 조울증이 생겼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게 청소들을 하면서 앞으로는 과정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겠다는 결심이 생겼어.

일할 때도 일에만 집중하고, 집에 와서는 운동이나 정리 같이 내 루틴 지키는 데 집중하고, 포커할 때는 포커에만 집중하고 이렇게 말이지.

사실 지금 다니는 공장도 결국에 내년에는 그만둘 계획으로 다니고 있어.

그리고 모은 돈으로 전업을 목표로 1년 정도 투자해볼 계획이야.

만약 생존한다면 10년은 포커 플레이어로 살아남는 게 목표고.

그 이후로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어. 20대 초반에 접었던 소설가의 꿈도 다시 시작해보던가, 영화 감독도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

어쩌면 아무렇게나 준비되지 않은 채 세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펜션 운영하면서 바다 보면서 유유자적 사는 것도 꽤 괜찮을 거 같네.

아니면 그 시점에는 다른 풍경을 보았기 때문에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뭔가 글을 쓰다 보니까 쓸 내용의 착상은 계속해서 떠오르는데 여기에서 끊는 게 적당하겠네.

어쨌든 내일 되면 금세 포기하고 또 원상복구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이 영감과 행동에 대한 끄적임이 먼 미래의 나를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되길 기대하며 여기까지 씀.

근데 왜 이걸 왜 그라인딩 게시판에 쓰냐고?

자게 가면 어그로 너무 끌리잖어 ㅎ 저번에 술 먹고 쓴 글 전혀 예상도 못 했는데 추게 간 거보고 식겁해서 못 올리겠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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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5 15:42:13

2024.09.25 22:29:39

@밤부스파이크

2024.09.25 15:52:18

2024.09.25 22:32:33

@Teaser

2024.09.25 22:34:03

@WT

2024.09.25 22:38:38

2024.09.25 20:09:44

2024.09.25 22:50:16

@시스템

2024.09.26 1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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