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대구에서 20살 동갑 부모님들의 만남
1990 엄마가 임신한거 알고 아빠가 엄마 보쌈해서 청송 본가에 내려놓고 다시 대구 일하러감
1990-1993 나 태어나고 아빠 군대가서 상근예비역하면서 청송 본가에서 같이 농사짓고 삼
1995-1996 엄마랑 아빠 대구 와서 아빠는 택시, 엄마는 공장에 취직해서 돈 벌고 나는 무슨 학원이라는 어린이집 같은 애들 학원다님
이 과정에서 이사를 4번 정도 했다고 함
1997 엄마가 집나감- 고모네에 잠시 맡겨서 지냄
1) 아빠가 세븐포커에 미쳐서 번돈을 다 잃고 다녀서 거기에 못이겨서 나갔다는 엄마 증언
2) 엄마가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돈을 갖다 바쳐서 아빠가 아무리 벌어도 돈이 모자랐는데 아에 그 종교에 들어가서 산다더라의 아빠 증언
아빠가 포커를 어릴때 알려준걸 봐서 둘다 맞는말 같음
1998 아빠랑 둘이서 삼, 그 와중에 곧 새 엄마가 될거라는 수 많은 사람들이 스쳐감. 지금 나이에서야 이해가 되긴 함 아빠는 이 당시에 28살임
1998-1999 아빠가 둘이서 살기 힘들다고 한학기하고 할머니댁에 보냄. 1년 쯤 지났을 때 큰아빠네 사촌형 2명(3살,4살 위)도 같은 처지로 할머니댁에 함께 삼
1999 아빠가 엄마 찾음 다시 살자고 회유
시골에 집 하나 얻어서 농사짓고 삼. 같이 산지 6개월정도 만에 진짜 사소한걸로 대판 싸워서 콩가루 집안이 됨(이 말 뜻을 난 이 때 알았음)
다행히 한달후에 내 동생이 생겨서 어찌저찌 화해해서 풀림. 한달동안 엄마를 아줌마라 부름. 엄마 맨날 움
2000 아빠가 이걸론 안되겠다고 다시 대구 가서 일해서 살자고 하며 사업을 벌림. 관광버스에서 건강식품 파는일 ^-^
아빠가 자리 잡았다고 시골에 있는 나와 엄마를 데리고 대구로 감. 투룸에서 돌지난 애기 데리고 넷이서 함께 삼
2001 연초부터 빚쟁이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함. 아빠는 연락두절이 일상이고 한달에 한번을 못봄. 집에 있는돈도 다 떨어져서 옆집 아빠 친구네에 돈 빌려서 씀
거의 매일 같이 안고 울었던거 같음.
그러다 아빠가 교통사고 심하게 나서 죽을 위기라고 함. 수술을 안해줘서 병원 4개 돌려지고 5번째에서 수술해줌. 뇌사상태 되어버림
보험금 나오니까 그래도 병원비랑 생활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함.
그러다 아빠가 기적적으로 깨어남(3개월 정도 후?). 장애판정 받음
근데 둘이 이혼한다고 난리가 남 (아빠는 엄마가 아빠 죽이려고 한다 vs 엄마는 아빠가 뇌를 다쳐서 망상이 심하다)
결국 더 이상 못살겠다고 이혼을 했는데, 할머니가 아빠 뇌사 상태일때 아빠 엄지 손 지장 찍어서 보험금을 엄마 → 할머니로 바꿔서 싹 다 가져감
2002 이혼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돈이 없어서 애를 못데려가고 할머니네에서 키우는걸로 아빠가 나랑 동생 데려감
나랑 동생은 별 수 없이 할머니댁에서 살게 됐는데 알고보니 아빠가 엄마 이름으로 사채를 2천을 넘게 씀. 그 당시 담배 1300원?
엄마는 보험금 그거 원래 주는거에서 빚만 좀 까달랬는데 할머니는 아빠 사채빚 갚는다고 다 썼다고 없다고 함
2003 세상 나락가서 할머니집에서 농사지으면서 학교 다니는데 사촌형들은 맨날 뺑끼치고 도망감. 그리고 하루에 한번 이상은 맨날 때림 개맞음 맨날 맞음 맨날 움
새벽5시에 밭에가서 일하고 7시반에 집에와서 학교갈 준비하고 학교 끝나고 6시에 도착하면 또 밭에가고 9시 다 되어서 들어오고 그랬음
맨날 쳐맞아도 할머니는 형들이라고 아무말도 안함 진짜 얼굴 다 터져서 지랄나도 안감
2005 고등학교는 이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서 밭일 안할거라고 함. 아빠가 돈 벌면서 지원해줄테니 인문계 가라고 함
막상 진학상담 되니까 아빠 연락두절. 할머니는 시골의 공고로 보내서 장학금 받을 생각에 신이나서 상담함. 선생님도 거기 가라함
구미에 국립구미전자공업고등하교 가서 학비 거의 없고 기숙사비 거의 없는 곳 가는걸로 타협보고 감. 이때 엄마가 도와주기로 함
엄마는 사채 이자 갚느라 원금 반 까는데 미친듯이 일해도3년이 걸려버림. 그래도 내 학비 지원해준다 캄
2008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자는 성적 상위 30%되어야 삼성 지원을 감. 그리고 대학가는 애들도 좀 있고 성적이 중학교 성적 35%컷이라 다들 공부 못하지 않음
그때 당시 상위 20%유지하고 삼성가서 돈이나 벌어야지 하는데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치는날 아빠가 쓰러졌고 곧 죽는다고 함
선생한테 말하니 그거 다 나중에 처리된다고 가라고 함. 병원감. 아빠 위험한거 넘어가고 1주일 정도 후에 식물인간됨
1학기 기말시험칠 때 선생이 중간성적이 기말성적 100%들어간다고 잘하라 함. 개잘해버림 뿌듯했음
갑자기 말바꿈. 아직도 기억남 "아버지가 안돌아가셔서 80% 들어간다고 하네". 그 당시 필기 실기 100점이 6개가 넘었는데도 성적이 뚝 떨어짐
총 성적 31%됨. 삼성 원서 못 씀 인생좆대버림
기말 시험치고 아버지 돌아가심.
2009-2011 갑자기 선택한 대학교로 어찌저찌 지방대학교 감. 카이로프락틱이라고 현재 도수치료+추나요법의 근간이 되는걸 배움
내 인생의 변경점이 될거라 생각함. 열심히 해서 미국가서 돈벌면서 공부해서 대학원 졸업하면 된다고 함
2012 미국가서 생활비 + 학비의 예상 견적이 나옴. 2억 5천이라고 함. 교수님도 이정도까진 생각안했다고 함
나를 포함한 몇 명 빼고 약 7명 정도가 미국 따라감. (현재 병원도 차리고, 의사하고 다들 잘 산다 성공해서 그저 부럽다)
그때 배운 척추교정 아직도 잘 하고 다님. 아까워 디질거 같음
2013 갑작스레 취업으로 진로 바꿈. 다행힌건 이때 취직한 "준코"본사에서 잘 지내서 여태까지 일은 잘하고 다니고 옛날에 비해 뒤질거 같아도 진짜 살만은 하다고 느낌
매 년마다 홀덤으로 치면 배드빗 쳐맞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어느순간 지나니까 핸드 히스토리가 되어버림
예전에 사주보니까 태어나서부터 내리막길 오지게 타다가 20살 부터 진짜 조금씩 50살 까지 위닝 그래프 탄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다는게 더 화가남
도박빚이다 뭐다 하는건 다 자기가 실수한거고 안할 수 있었던거잖아. 난 왜 내가 열심히 살아도 이따구일까 싶었는데
가끔 세상살기 힘들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억까 당하는 이런 인생도 있다 얘기해주고 싶어서 주저리 써봄
그런의미로 위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