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아무 이유 없이 계속 앉아있었다. 초저녁의 공원 밴치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연인들도 있었고, 분수 안에서 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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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1 22:40:36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아무 이유 없이 계속 앉아있었다. 

초저녁의 공원 밴치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랑스러워 보이는 연인들도 있었고, 분수 안에서 뿌려진 동전을 주워대는 중학생 무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틈 사이에 끼어 멍하니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가 있었다. 

 

'여기서 자볼까' 

 

내 머리속에 노숙자들은 공원 밴치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거나 역 에서 박스를 깔고 하룻밤을 보내는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었기에, 이대로 밴치에 누워 밤을 지샐까 고민했다. 

그러나 하루를 버틴다 한들 내일이 없었다. 당장 컵라면 두 끼 사먹을 돈이 떨어지면 밥은 어떻게 하지? 마실 물은 또 어디서 구하지? 날씨가 추워지면 그땐 어떻게 해야될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잘 수 없었던까닭은,  아직 내 가슴 한 켠에  티끌만한 자존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존심은 나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였다. 

'저새끼보다 등수가 안나와?' 

'지금은 힘들지만 나는 이들과는 달라. 나중에 꼭 성공할거야' 

'내 휴가가 이것밖에 안돼?' 

'쟤보다 내가 더 잘치는데'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인생을 살 것이라는 믿음. 눈 앞의 상대 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 자존심은 지금까지 나를 발전시키고 단련시켜준 스승이자 내면의 라이벌이었다. 

 

급한대로 얼마 남지않은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포털 사이트에서 '노숙'을 검색해본다. 

 

'간사이 공항 노숙 꿀팁좀요~' 

'인천 공항 노숙 꿀 짜리' 

 

일반인들은 노숙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공항에서 하룻밤 버티는 정도로.. 

당연하게도 몰릴대로 몰린 거리의 노숙자가 자랑하듯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 찾은 후기들도 실용적인 팁은 거의 전무한 장난 수준의 후기들 뿐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갑을 꺼낸다. 

남아 있는 담배는 딱 두대. 

그 중 하나를 집어들어 불을 붙인다. 

그리곤 관련 글들을 찾아 한참을  더 뒤적거렸다. 

 

네이버 지식인에 다수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가출한 청소년인데 잘 곳이 없다. 도와달라' 

 

그 글에서 처음으로 쉼터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단기, 중기, 장기의 쉼터가 각각 따로 존재 했으며 밥도 공짜로 주고 재워도 준다. 청소년 쉼터이니 만큼 나이 제한이 걸려있었지만 내 경우 만 나이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목포 지역의 단기 쉼터를 찾아 일단 오늘 밤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색을 하니 전화번호가 하나 나왔다. 

그 사이에 담배는 다 타들어가 필터를 태우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자 한 남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 네.. 저기 제가 오늘 잘 곳이 없어서 그런데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될 줄 알았다. 나같은 사람을 위한 쉼터이니까.  나라에서 예산을 받고 그걸로 운영되는 기관이니까. 나도 국민이니까..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실로 가관이었다. 

 

"혹시 어느지역 사람이세요?" 

 

"? Xx 인데요" 

 

"지금 코로나때문에 외지에서 오신분은 받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순간 당황해서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게 뭐야... 

내 나이를 물어본것도 아니고,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물어본 것도아니고 얼마나 있을지를 물어본 것도 아닌 내 출신을 물어보곤, 그대로 거절했다. 보통 잘 곳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상당히 안좋은 빈민에 가까운 상태일텐데. 

그런 절박한 사람을 공공기관의 사람이, 물류센터 반장이 처음온 일용직 근로자를 대하는 태도로 거절했다. 

 

'ㅎ..ㅎㅎ하하.. 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화가 났다. 

 

'이새끼들 뭐지? 내가 여자였어도 그냥 버려뒀을까? 무슨일이 생길 줄 알고? 아니 남자라도 이건 아니지 않나?' 

 

정말 진심으로 화가났다. 

이 나라 제도와 역겨운 공무원들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엿이나 먹으라지 씨발!

 

사람이 언제 절망에 빠질까. 

희망이 부서지고 또 부서져 더이상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절망에 빠진다. 그동안 나는 갈기갈기 찢기고 뜯어져 엉망진창인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삶에 흥미를 잃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이 상황이 되도록  의지할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과거의 나에게 자괴감을 느끼며 버텨왔다. 이제 더 슬퍼할 여력도, 우울할 여력도 없다.

 

억울함. 분명 스스로 자초한 결과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참을수 없을정도로 미칠듯이 억울했다. 이 억울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노라는 감정으로 바뀌어 갔다. 땅 위에 내린 눈이 녹아 없어지듯, 풀잎 위에 생긴 이슬이 햇빛에 말라 사라지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감정으로 인해 나는 노숙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주겠어' 

'니들이 뭔데. 그런다고 내가 죽을 줄 알아?' 

'반드시 살아돌아간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온 몸을 휘덮는 강렬한 분노감과 함께, 이날 나는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놨다. 한 평생을 같이한 분신과도 같은 놈이었지만 생각보다 이별은 어렵지않았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짓이든 한다' 

 

경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갈까?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쳐볼까? 

아니야 이건 최후의 최후까지 갔을때 고민해보자. 아직은 돈도 있고 버틸 수있어. 일단 역으로 가자. 거기서 다른 노숙자들 하는걸 보고 배워보자. 구걸이든, 무료 배식소든, 목포에도 분명 노숙자는 존재하고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을테니까. 

 

지도 앱을 켜서 목포역 위치를 확인한다. 이곳에서 걸어서 1시간 50분 정도의 거리였다. 

나는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걸래짝이 된 운동화는 끈도 없어 한 걸음 걸을때마다 발등 부분 쿠션이 내 맨발을 찰싹 찰싹 때려댔고, 오버사이즈의 슬리퍼를 신은 것 마냥 발이 빠졌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걷다가 담배가 피고 싶을때면 길거리에 버려진 꽁초를 주워폈다. 

마지막 남은 돗대는 차마 쉽게 필 수가 없었다. 이것마저 펴버리면 다음에 또 언제 제대로된 담배를 필지 몰랐으니까.

 

립스틱이 묻은 담배, 누가 밟았는지 찌그러진 담배, 필터 가까이 타버린 담배. 분명 하나하나 저마다의 사연으로 태워진 담배들이겠지. 

버려진 꽁초하나마다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한 대 한 대 감추어진 사연을 추리해가며 걸어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골목길에 자판기와 동시에 슈퍼에서 쓰는 듯한 정자가 보였다. 인터넷 후기에 분명 자기가 노숙할때 자판기 밑을 뒤져 거기서 얻은 동전으로 살아갔다는 글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판기 근처를 뒤적거렸다만 동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담배를 꺼냈다. 지금 펴 버리면 또 언제 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 내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피같은 3백원을 꺼내 율무차를 뽑아들었다. 

다음으로 망설임 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모금 빨때마다 각오를 다졌고 내 뱉을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보며 황홀감에 휩쌓였다. 과거 인디언들이 의식 행사때 사용했다는 담배의 기원에 한 없이 충실한 내 마지막 흡연이었다. 

 

목포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밤중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노숙자가 보이질 않는다. 

역사는 불이 다 꺼져있다. 

 

'뭐지 이거? 저 안에 다 들어가 있는건가' 

 

설마 하며 역사 출입문을 잡고 당겨보자 아니나 다를까 잠겨있다. 

헛걸음이었다. 그렇게 칼로리를 소비해가며 걸어왔는데.. 

서울역 노숙자 뉴스야 뭐 잊을만 하면  나오는거고 인터넷 기사에서도 목포역 노숙자 글이 보이길래 당연히 역에서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한번 화가 났다. 

도대체 노숙자들 어디서 자라는거야? 다 뒤지라는거야 시발? 

 

결국 이날 나는 역 앞 개집 옆에 늘어진  의자에 앉아서 밤을 보냈다. 

바닥에 똥이 있긴 한것 같았는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묶여있는 개를 보며 한 마디 건낸다. 

 

'우리 같은데에서 자는데 그래도 나는 묶여있진 않으니까 내가 더 낫다 인마' BAD2963B-C2F3-47C6-B655-08DBE93C982D.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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