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옆동네 카페에 끄적여서 올린거 포고 버전으로 컨버트.
이야기 전개 상 화자 이외의 한명은 생컨 처리함.이건 봐줘라.
벌써 몇 년 전이다.
내가 갓 골드스타를 단 지 얼마 안 돼서 생컨이네 집에 얹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강남 오프에 가기위해 일단 지하철을 내려야 했다.
뱅뱅사거리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에퀴티를 짜 맞추는 노인이 있었다.
평소 부족하다 싶은 플랍 개 넛츠 슬로우 플레이를 한 수 배우고자 말을 붙여보았더니 코칭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시간당 $50에 해 줄 수 없습니까? " 했더니
"코칭비용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배울 것 없이 프리에 때려 박으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가르쳐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진지 빨고 하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첵 백
첵 콜 벳폴드 질이다. 내가 보기에는 베스트 핸드인데 자꾸만 밸류를 뽑지 않고 있었다.
코칭비가$400을 넘어가길래 이제 볼 만큼 봤으니 그만 합시다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니미 PC방 요금도 그 노인의 것까지 기만원이넘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보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싯아웃 해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돌릴 만큼 돌려야 피쉬들이 덥썩 하는게지. 레귤러더러 재촉한다고 루징콜을 해주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아니 배우겠다는 놈이 그만 배우겠다는데 무얼 더 돌린단 말이오? 노인장,외고집이시구먼.
코칭비랑 pc방비 내다가 파산할 지경이라니까요. 나는 마이크로 유저란 말이오.ㅜㅜ"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배우시오. 난 코칭 안해드리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지켜보다가 그만 둘 수도 없고, 어차피 뱅크롤 복구는 틀린 것 같고 해서,될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돌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플레이가 망가진다니까. 슬로우질은 제대로 만들어야지. 달고 가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턴 드로잉 데드 개넛츠를 들고 상대 동크벳을 놓고 태연스럽게 담배를 태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벳 슬라이더를 이리저리 긁어보더니 다 됐다고 쇼브를 때린다.
사실 다되기는 플랍에 이미 커밋이 되어 있던 테이블이다.
그 사이 pc방 선불 요금이 끝나 다시 충전을 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 따위로 코칭을 해 가지고 사람들이 따를 턱이 없다. 유저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허드를 쓸 줄도 모르고 마냥 엣지가 없어 보이는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길건너 강남 오프 매장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바라보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쩌는 슈노엘급 플레이어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때때묵은 포스 후드티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생컨에게 핸드 히스토리를 보여주니 플레이가 세련되었다고 야단이다.
길게 보고 밸류를 맥시멈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생컨의 설명을 들어 보니, 비포나 플랍에 팟이 너무 커지면 턴 리버 썩아웃에 내 스택을 전부 뺏길 수가 있으며,
그렇다고 스몰볼로만 가다보면 피쉬를 커밋시키기 힘들어 밸류를 맥시마이징 하기가 힘들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사이즈로 달고 가다가 턴과 리버에 끝장을 내는 플레이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방수 좋던 시절의 피쉬들은 내가 넛을 들고 모든 스트릿에 팟 팟 팟 벳을 대어도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는 피쉬들도 마냥 피쉬가 아닌 것이 한번 리딩이 되었다 싶으면 곧잘 빠져나가기 일쑤다.
예전에는 피쉬를 사냥할 때 수많은 핸드를 나누고 챗박스로 살살 긁어놓고 올인을 날린다.
난다리 올인이라고 한다. 물론 넛츠가 아니면 위험이 따른다.
요새는 트래커다 뭐다 허드를 써서 확률을 계산하고 벳질과 폴드를 결정한다.
결정이 쉽다. 그러나 상대를 열리게 하긴 힘들다.
그렇다고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챗박스에 블라블라 떠들어가며 난다리 올인을 날릴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3벳만 해도 그러하다.
옛날에는 3벳을 날리면 보통 AK 이상 레귤러는1010+, 정도로 구별했고 하루종일 코만 파던 놈들의 그것은 KK 이하로는 상대를 하지 않았다.
3벳이란 나의 오픈 레이즈에 크게 얹어서 벳질을 날리는 것이다.
베팅만 보아서는 이놈이 몬스터인지 그냥 스퀴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간의 이미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리스펙트라는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인정도 받지 못하는데 상위 5%핸드로만 3벳을 날릴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미디엄 포켓 셋마이닝을 포기해 줄 사람도 없다.
올드 스쿨들은 블러핑은 블러핑이요 넛츠는 넛츠지만 슬로우 플레이하는 순간만은 오직 상대의 칩을 싹 다 가져오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팟 커밋을 이루어냈다.
오늘 보여준 핸드 히스토리들도 그런 심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코칭을 해서 유저들이 따를 리가 없다.'던 말은
'그런 레귤러가 나같은 마이크로 좆뉴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판떼기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A게이머가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그간 쌓인 fpp로 새틀이나 돌려보시라 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강남 오프의 지붕 간판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간판 밑으로 이제 막 홀덤을 배운듯한 꼬맹이들이 저마다의 배드빗 스토리를 읊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꼬맹이들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넛츠 슬로우질을 하다가 유연히 창밖의 어린 피쉬들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몇년 전 슬로우 플레이질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2015.10.27 15:53:18
2015.10.27 18:05:26
@나눕
2015.10.27 15:55:33
2015.10.27 18:05:56
@조찐이
2015.10.27 15:57:57
오랜만에 달곰이놈 글에 불알을 탁 치다 고통에 사무쳐 눈물을 글썽이며 bb하나를 던져주고간다
2015.10.27 18:06:22
@사자돌이
2015.10.27 17:06:22
미친 시발 감탄을 금할길이 없네..
맨날 라이트 노벨만 보다가 오랜만에 진짜 정통 문학을 본 느낌이다.
2015.10.27 18:07:35
@마일스톤
2015.10.27 18:34:20
패러디 잘하는 게 은근히 쉽지 않은데 감탄했다
2015.10.28 16:48:45
@Alice
2015.10.27 21:38:24
2015.10.28 16:49:05
@로보트
2015.10.27 22:08:43
2015.10.28 16:49:28
@하루
2015.10.28 17:34:06
@달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