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으로 이직한지 반 년 정도 되었건만, 아직도 일이 익숙지 않은 듯 하다. 특히나 최근 이 주 동안 중은 주말에 갑작스런 출근을 한다던지, 새벽 다섯시에 퇴근을 하는 등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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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 03:42:34

 

새 직장으로 이직한지 반 년 정도 되었건만, 아직도 일이 익숙지 않은 듯 하다. 특히나 최근 이 주 동안 중은 주말에 갑작스런 출근을 한다던지, 새벽 다섯시에 퇴근을 하는 등 평소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던 문제들이 연달아 터져 나를 곤혹케 했다. 일이 고되다보니, 그라인딩을 한답시고 포커 클라이언트를 클릭하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최근의 시간들이 너무나 바빴기에, 오늘과 같이 특별한 일이 없는 금요일 밤이 참으로 반갑다. 오랜만에 밤을 새가며 게임을 칠 수 있을듯 하여 친한 동생에게 연락을 한다.


동생녀석의 일이 나보다 조금 더 늦게 마치는 바람에 일단 집에 들러 짐을 내려놓았다. 나오는 길에 서랍에 널부러져있는 현금과 지갑을 주섬주섬 챙겨 나온다. 녀석과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 간단하게 안부인사를 한 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택시를 타고 함께 게임 장소로 이동한다.


가게에 도착하니 몇 명의 핸디들이 이미 와 있다. 우리가 도착하니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 양 바로 테이블이 오픈된다. 두 줄쯤 되는 칩을 받아 테이블에 앉는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칩이 꽤나 묵직하다. 칩셔플을 몇 번 하고나니 금새 손목이 아릿아릿해지지만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는다. 테이블은 금새 담배연기로 자욱해지고. 짙은 연기사이로는 보이는 두 장의 카드는 반짝거리며 빛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아무래도 오늘 흐름은 영 좋지 않은 듯 하다. 이렇다할 핸드도 오지 않는데다가 테이블엔 특별히 좋은 핸디도 보이지 않는다. 물이 좋아 종종 오던 곳인데 오늘은 매 번 보던 핸디들만 있고, 참 별로인 듯 하다. 몇 시간동안 게임해서 나는 겨우 본전을 유지하고 있었고, 같이 온 동생녀석은 얼핏 보기에도 벌써 두세바인 정도를 플레이 하고 있었다.


오늘은 물도 별로고 핸디 수도 적어 잃어버린 칩을 찾기 힘들 것 같아 보인다. 이윽고 동생녀석이 살짝 열린듯한 플레이를 보여주더니만, 내가 하는 오픈에도 자꾸 들어오기 시작한다. 점점 둘이 헤즈업 하는 스팟이 잦아지고, 헤즈업에서 내가 거의 져 버리는 바람에 나 또한 어느새 조금씩 열려버렸다. 결국 동생녀석이 내 빅 블러프를 잡아버리면서 나는 한 바인을 고스란히 내 주게 된다. 미안하단 말과 함께 수북히 쌓인 칩을 가져가는 녀석이 참 야속하다. 중간중간 날아든 뜬금없는 동크벳들이 왜이리 거슬렸는지. 동생은 죽으라는 뜻으로 베팅했다고 말하면서 미안해 한다. 허나 게임을 하다보면 포커 테이블 위에서 참 많이 들리는 말이지만, 이 말처럼 영혼없어 보이는 말이 없다. 아마 정말로, 도박쟁이들에겐 영혼이랄게 없기 때문일 지 모른다. 일단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애를 써 보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배신감은 내가 예수나 석가와 같은 성인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인 듯 보인다. 그래도 지고있는 녀석이 내 칩을 보태 다시 올라온다면 좋은 거라 애써 생각하며, 새로이 바이인을 해 온다.

 

이후 두어시간을 더 치는동안 나는 절반정도를 복구하고, 동생은 두 바이인쯤 잃은 채로 마무리가 되었다. 원래는 오랜만에 찾아온 주말 저녁 시간이라 밤을 새가며 게임을 칠 생각으로 갔던 것인데, 시간이 지나며 핸디가 하나 둘 씩 줄더니 결국 테이블이 파토가 나버린 것이었다. 간만에 찾아온 시간을 이대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쉽기도 하고, 둘 다 져버린 채로 나와 버렸으니 동생 녀석과 같이 다른 곳을 가 보려고 다른 여러 곳을 찾아보았다. 우리는 조금 낮은 스테이크지만 지금 위치한 곳과 가까운 보드카페에 가서 소소하게 게임하기로 결정한다. 그곳은 판이 작아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적어도 허탕치며 나올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새벽 어둠 사이로 부랴부랴 택시를 잡고 이동해 간 카페에는 역시나 장날이라도 된 듯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시끄럽게 들려오는 칩소리 가운데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온다.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와 희열에 찬 목소리가 쌍을 지어 들린다. 허나 저 기뻐하는 감정은 이내 곧 억울함과 원망으로 바뀔 것이다.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이기에. 역시나 테이블당 하나둘은 아는얼굴들이 있었고, 간만에 온 탓인지 꽤나 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주위를 돌며 으레 하듯 안면이 있는 핸디 및 딜러들과 인사를 하고, 조금의 기다림 후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조금씩 스택을 쌓고 있는 도중, 이내 한 여자가 내 테이블로 칩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다. 옮기면서 다른 핸디와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옆 테이블에서 잘 안된다고 궁시렁거리는게 영락없는 피쉬의 모습이다. 누군가 하고 자세히 보니 예전에 다른 곳에서 몇 번인가 본 여성핸디이다. 그리고 그 낯익음을 인식한 순간,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동생녀석과 그녀에 대해 카톡을 한다.

 

 

누구나 그렇듯, 이쪽 바닥에서 게임을 어느정도 치다보면 여성 핸디들은 왠만해서는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보통 게임을 치는 대다수의 핸디들은 남자들이기에, 몇 없는 여성 핸디들은 당연히 눈에 띄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여성 핸디들은 피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같은 테이블에서 플레이 하기 위해 더욱 살가이 지내려 하는 등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날 이 여인을 얼핏 보았을 때 다른사람인 줄로 알았으니, 이 여인의 모습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모습이 내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이 여인의 첫 게임때의 모습을 내가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이 여인을 본 곳은 올해 초 압구정의 어느 한 보드카페였다.

여느날과 같이 매일 보는 레귤러들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지리한 눈치싸움을 하는 와중에, 이 여인은 다른 레귤러 핸디 A 와 함께 왔었다. 입고있는 퍼 코트는 값이 꽤나 나가보였으며, 미용실에서 해온 듯 보이는 머리나 테이블에서의 말투 등은 이 여인의 여유로운 생활수준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레귤러들은 좋은 손님의 등장에 사람좋은 미소로 응답해 주었으며, 게임 도중 세세한 규칙들도 친절히 알려주는 등 간만에 새로 온 멋진 고객을 맞이하는데에 여념들이 없었다. 이후 며칠간 위의 보드카페를 다니며 이 여인은 칩을 뿌려대었고, 우리는 그것을 웃으며 받아먹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람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선 내가 보기에 여인의 생활수준이 넉넉해 보였던 것과, 이 카페가 압구정에 있더라도 블라인드가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기천의 돈을 날릴 수 있는 곳이지만,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닐뿐더러 그러한 경우는 별로 보지 못하였다.

 

 

며칠간 건너건너 들리는 소문에는 이 여인이 돈이 많은 것을 알고, A핸디가 돈을 먹기 위해 작업을 하기 위해 데려온 것이라는 얘기들도 있었으나, 나는 그러한 소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여인은 위 카페에서 주최한 수십명이 모인 이벤트 토너에서 10여명이나 되는 사람을 자르고 무려 1등을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파이널 테이블에서 찹을 한 것으로 알고있지만, 그렇더라도 초심자에게는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이후 어느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아, 내 기억에서 잊혀졌던 핸디 중 하나이다.

 

 

그렇게 눈에 들어온 그녀의 모습은 내 예전 기억과 겹쳐보이며 더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머리는 어찌나 안감았는지 덕지덕지 덩어리 진 머리카락이며, 화장기 하나 없는 퍽퍽한 얼굴에, 몇 달 되지않은 짧은 시간동안 얼굴 주름은 두 세배는 늘어난 듯 하였다. 보기좋은 정도의 체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살도 많이 빠지고 얼굴 또한 거무스름해졌다. 강원랜드는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마치 그곳에 널부러진 군상들 중 하나를 보는 것 같다. 그녀는 그러한 몰골로 온갖 히스테리를 떠앉고 옆사람에게 투덜대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자리에 앉아 안봤다를 난무하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고, 한 번의 팟조차 제대로 가져가지 못했다. 레귤러로 보이는 사람들은 여인에게 그만하는게 좋겠다며 말을 건네지만, 손으로는 그녀의 칩을 바삐 주워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약간의 칩들을 되돌려 주어도, 그 칩들 또한 다음 블라인드 벳 위에 얹혀질 뿐이었다. 이번만 하고 안한다는 말을 입에 밴 듯 되풀이하며, 칩을 뿌려대고 있었다. 나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묵묵히 구르는 칩들을 주워담을 뿐이었다. 이후 그녀는 몇 번이나 카운터를 다녀온 뒤에, 종국에는 죄없는 딜러에게 악에 받힌 말들을 쏟아낸 뒤 일어나 사라졌다. 

 


여인이 사라진 자리는 또다른 누군가로 채워졌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계속 게임을 한다. 

떠오르는 그녀의 초상이 이지러지다 이윽고 알아볼 수 없는 형상이 되어 눈앞에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삼키고, 들리지 않는 비명이 나를 감싸안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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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17.09.13 07:12:15

2017.09.16 16: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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